keyword

스플라이스 샘플로 AI가 작곡해준다? 'Create' 사용기

최근 AI를 비롯해 음악계에 기술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연주, 포스트 프로덕션 분야는 오랜 기간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된 기술과 저렴한 비용에 의해 연주자는 가상악기로 대체되고 있다. 믹싱, 마스터링, 포스트 프로덕션도 전문가의 영역을 벗어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아마추어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작곡 분야는 오랫동안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비록 지속적인 도전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의 감성으로 만든 것이 좋다'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작곡조차 AI가 인간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mojahid mottakin Dj6D287bxiQ unsplash

아무래도 비교적 인간의 정교한 작업이 덜 들어가고, 규격화되고 분류화하기 쉬운 장르에 먼저 AI 작곡이 등장한다. 주로 일렉트릭이나 힙합 등 장르에서 루프 기반 음악 작곡에 AI를 활용하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구독 기반 샘플 라이브러리 Splice는 최근 Create라는 AI 도구를 출시했다. Create는 'AI를 이용해 작곡 영감을 받는' 것을 목표로 클릭 몇 번에 여러 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루프를 만들어 준다.

Splice의 샘플을 활용한 AI 작곡 도구 Create
사진=Splice

Create는 사용자가 사전 설정한 취향, 장르, 스타일을 기반으로 다양한 악기 트랙을 제안해 준다. Chill Lounge, Dance Pop, Disco Fever 등 몇 가지 음악 스타일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AI가 몇 개의 악기 트랙을 생성한다.

이것만으로도 '짠'하면서 하나의 루프가 탄생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하지만 Create의 장점은 새로고침을 통해 원하는 느낌이 나올 때까지 드럼, 베이스, 신스 트랙을 계속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Splice의 샘플을 활용한 AI 작곡 도구 Create
사진=Splice

전체 루프를 새로고침하면 키와 템포가 바뀌면서 아예 새로운 루프를 제안한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만 특정 악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만 다른 샘플로 바꿔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샘플은 따로 저장해 둘 수도 있다.

이제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사운드가 나온다면 변형된 템포와 전조가 적용된 전체 루프를 악기별로 나눈 스템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다. 이 트랙을 조립하고 배열하기만 해도 제법 괜찮은 비트를 만들 수 있다.

Splice의 샘플을 활용한 AI 작곡 도구 Create
사진=Splice
Splice의 샘플을 활용한 AI 작곡 도구 Create
BPM을 변경하면 자동으로 샘플들에 타임 스트레치가 적용된다 (사진=Splice)

물론 비트메이킹이 이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멜로디라는 어려운 영역이 남아 있다. 이렇게 템포와 키를 맞추기 위해 마구 변형된 샘플 소스의 퀄리티 또한 정규 음원의 수준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말 그대로 '작곡에 영감을 주기 위한' 보조 도구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랙을 참고해 직접 신디사이저로 연주하면서 새로 녹음하는 것도 방법이다.

Splice의 샘플을 활용한 AI 작곡 도구 Create
14가지 종류의 악기를 추가할 수 있다 (사진=Splice)

따라서 Create를 온전한 'AI 작곡' 기술이라고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다만 매우 쉬운 수준의 비트메이킹도 작곡이라고 친다면, Create도 그 정도 작곡은 할 수 있다. 쉬운 작업은 AI가 쉽게 따라잡는다. 어려운 작업은 AI가 따라오기 더 어렵다. 즉, 인간의 비트메이킹 실력이 최소한 Create보다는 나아야 한다.

Create만을 이용해 AI의 도움으로 누구나 곡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Create에서 만들어지는 샘플들은 트랙끼리 종종 부딛히는 소리도 있었고 어색한 경우도 많았다. 즉, 이 소스들을 배치시키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거의 새로운 결과가 만들어져야 의미 있는 작업물이 나올 것이다.


Splice의 Create는 다른 AI 작곡 도구와는 지향점이 다르다. 비교적 '만들기 쉬운' 루프 음악에 특화되어 있으면서도, 사용자에게 완성된 작곡 결과를 제공하지 않는다. 현재 구글, Meta 등이 공개한 기술들을 보면 AI가 Create보다 훨씬 더 '곡처럼' 완성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말이다.

Create가 제공하는 것은 기존 Splice 서비스의 확대다. Splice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샘플 라이브러리 서비스를 사용하기 쉽게 보완한 것에 가깝다. 다만 여기에 사전 설정된 스타일에 적합한 샘플을 BPM과 키에 맞춰 제공해 주기 위해 AI를 활용한 아주 효과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AI 등장에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소규모, 소자본, 아마추어 뮤지션에게는 AI가 기성 뮤지션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 수도 있다.

Splice의 샘플을 활용한 AI 작곡 도구 Create
Splice Create는 비트메이킹 진입 장벽을 지금보다 더 낮출 수 있다. (사진=Splice)

하지만 AI를 비롯해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가져오는 문제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AI가 인간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음악 스타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저렴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악이 시장에 더 많이 공급될수록 그렇지 못한 음악은 경쟁력을 잃어간다.

따라서 AI는 음악 장르의 쇠퇴를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 음악의 공급이 장르에 대한 수요가 아니라 생산의 효율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 행위는 경제 논리보다는 취향의 문제다. 그러다 보니 음악의 공급과 대중의 수요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AI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현재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쉬운 음악'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음악'까지 섭렵할 수 있는 AI 도구를 뮤지션들이 저렴한 비용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AI가 창작의 자유를 증대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희망 사항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