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츄레이션의 종류와 용도(진공관, 테이프, 트랜지스터)

디지털 오디오 작업에서 세츄레이션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파트다. 아날로그 기기에 허용량 이상의 신호를 유입시킬 때 나오는 포화(Saturation) 상태에서 신호 왜곡이 발생하는데, 음악적으로 듣기 좋은 수준의 미세한 왜곡은 소리를 듣기 더 편안하게 해주고 기분 좋은 배음도 만들어준다.

세츄레이션은 단순히 이퀄라이징으로 음색을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 일정량의 왜곡이 발생해야 세츄레이션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소리가 두껍게, 날이 살아있게 변형되면서 실제 청감상 음색의 변화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저 하이 음역대를 키워서, 로우 음역대를 키워서 변화가 생기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시대 작업에서 세츄레이션을 주기 위해 꼭 실제 아날로그 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플러그인이 더 많이 보급되어 사용되고 있다. 세츄레이터 플러그인은 브랜드와 제품도 많고 가격도 무료부터 고가까지 제각각 천차만별이다. 이 플러그인들의 대표적인 세 가지 종류와 특징을 한번 알아보자.


소프트 클리핑과 하드 클리핑의 차이

들어가기에 앞서, 단순히 신호를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려 포화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여러분의 DAW에서도 별다른 세츄레이터 없이 가능하다.

sat1
사진=Hens Zimmerman, used under CC BY 2.0

단순히 Gain 양을 올려주는 플러그인을 사용해서 미터에 빨간색 불이 들어올 때까지 증폭시켜준다면 시끄럽게 소리가 찌그러질 것이다. 이렇게 디지털 상에서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면 아래 사진처럼 파형이 잘려 나가게 되는데, 이를 하드 클리핑(Hard-clipping)이라고 한다.

아날로그 기기에서 클리핑이 발생하는 방식은 이와 다르다. 칼같이 잘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둥그스름하게 찌그러진 모양으로 압축되는 데 이를 소프트 클리핑(Soft-clipping)이라고 한다.

sat2
사진=Iainf, used under CC BY 3.0

소프트 클리핑된 소리는 더 듣기 편안하고 약간의 '따스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우리가 의도하는 세츄레이션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드 클리핑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기타 이펙터에 쓰이는 디스토션은 하드 클리핑의 일종이고, 후술할 트랜지스터 장비를 복각한 세츄레이터들도 하드 클리핑이다.


세츄레이터의 세 가지 종류

대개 음악적 용도로 약간의 세츄레이션을 가해주는 플러그인들은 아날로그 장비를 복각한 경우가 많다. 주로 복각되는 아날로그 세츄레이터로는 진공관(Tube), 테이프(Tape), 트랜지스터(Transistor)가 대표적이다.

진공관

Cakewalk의 TL-64 Tube Leveler
Cakewalk의 TL-64 Tube Leveler

수많은 플러그인들이 진공관을 이용한 아날로그 장비를 복각한다. 진공관 효과는 조금씩 사용하면 크게 티가 나게 소리가 변하진 않지만 로우 미드를 풍성하게 채워주는 느낌을 만들어준다.

반면 진공관을 과하게 작동시키면 소리를 인위적으로 찌그러트릴 수도 있다. 이런 원리를 활용한 것이 진공관 기타 앰프의 오버 드라이브이다.

테이프

Caelum Audio의 Tape Cassette 2
Caelum Audio의 Tape Cassette 2

자기테이프는 마그네틱 입자를 이용해 소리를 녹음한다. 테이프의 입자가 모두 사용되어 추가로 유입되는 신호를 처리할 입자가 부족할 때 세츄레이션이 생긴다.

설정이 잘 맞춰지지 않은 테이프 레코더는 조금씩 고음역대가 깎여나가 진공관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을 만들어준다. 원래 자기테이프가 모두 고음역대를 깎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플러그인이 이런 효과를 모방해 부드러운 음색을 재현해주고 있다.

트랜지스터

Acustica Audio의 Neve 콘솔 복각 Cerise
Acustica Audio의 Neve 콘솔 복각 Cerise

위의 진공관, 테이프는 모두 소프트 클리핑 방식이다. 이 둘을 제외한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는 콘솔, 아날로그 장비들을 거치는 신호는 미세하게 하드 클리핑되어 세츄레이션 된다.

대표적으로 Neve 장비들이나 콘솔 에뮬레이션 플러그인 등이 트랜지스터 세츄레이션을 준다. 사실, 진공관을 사용하지 않는 하드웨어 및 복각 플러그인은 모두 트랜지스터라고 봐도 좋다.


아날로그 복각 플러그인, 꼭 필요할까?

CableGuys의 ShaperBox처럼 특정 아날로그 방식을 언급하지 않고 클리핑, 세츄레이션을 만들어주는 플러그인들도 있다. 사실 플러그인으로 제작된 세츄레이터들은 모두 디지털 안에서 소프트 클리핑, 하드 클리핑, 배음 구조 등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자신의 의도와 용도에 맞게 사용하면 어떤 제품을 쓰더라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Shaper box
arturia tap mello-fi

아직도 다양한 플러그인 회사들이 특정 테이프 머신이나 하드웨어의 이름을 언급하며 수많은 복각 플러그인을 내는 것은 그 장비만의 특징을 재현한 것도 있겠지만, 사용자의 편의를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믹스 도중 '진공관의 따뜻한 소리'나 '테이프의 로우파이한 음색'이 필요해진다면 바로 'Tube' 'Tape' 등의 이름이 붙은 플러그인을 찾아볼 수 있다.

거기다 '실제 Studer' 테이프 레코더로 믹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소리가 더 Studer답게 포근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덤이다. 믹스 엔지니어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더 좋은 믹스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