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 음향학이야기 (6) 음향 가변이 가능한 홀

곡의 스타일과 장르에 따라 필요한 잔향시간은 다릅니다. 타악기가 두드러지고 곡의 템포가 빠른 곡은 잔향이 길면 곡의 리듬감을 살리기 어렵고 지저분하게 들립니다. 반면,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때는 풍성한 잔향이 뒷받침되어야 오케스트라 본연의 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연주하는 곡에 적절하지 못한 잔향 시간을 가진 홀에서 음악을 연주하면 민감한 청취자들은 불편을 느낍니다.

연주하는 장르에 따라서도 잔향시간이 다릅니다. 현대에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대중음악, 연극, 강연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보통 1초의 잔향 시간은 강의를 하거나 밴드음악을 하기에 적절한 짧고 명료한 느낌이 나며, 2초의 잔향 시간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기 적절한 풍성한 소리가 납니다.

이렇게 곡과 장르에 따라 요구하는 음향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홀에서 음향 상태를 가변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등장했습니다.

홀의 부피가 커지면, 반사음의 경로가 길어져 잔향 시간이 증가합니다. 반면 내부 마감재의 흡음률이 늘어나면 잔향 시간이 줄어듭니다. 이 두 가지 원리를 사용하면 잔향 시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반사 표면에 커튼이나 블라인드처럼 흡음을 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하여 흡음률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입니다. 커튼을 치면 흡음률이 늘어나 잔향 시간이 줄어들고, 커튼을 걷으면 흡음률이 줄어들어 잔향시간이 늘어납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커튼은 주로 고음대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음의 잔향시간은 가변시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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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해오름. 측벽에 전동 블라인드를 사용해 음향을 가변시킨다.

두 번째로는 에코 챔버를 이용한 방식이 있습니다. 이는 공간의 부피를 증가시켜 잔향을 늘리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 콘서트홀 측벽 뒤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거대한 에코 챔버가 있습니다. 측벽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열면 에코 챔버와 콘서트홀이 연결되어 체적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잔향 시간이 늘어납니다. 문을 닫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잔향 시간이 줄어듭니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홀은 스위스의 루체른(Lucerne)에 있습니다. 루체른 호수에 위치한 루체른 문화-의회 센터(이후 루체른 홀)는 1,892석 규모로 1999년 개관한 현대의 홀입니다. 루체른은 호수, 알프스산맥의 전망, 매력적인 숙박시설로 인해 관광의 중심지였습니다. 루체른의 국제 음악 축제는 오랫동안 전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 홀은 직사각형 형태를 가지며, 홀의 양측과 전면에 위치한 거대한 에코 챔버가 있습니다. 발코니 주변에 펼쳐진 50개 흰색 문을 전부 또는 일부만 열어 사용합니다. 이 문은 폭이 2.43m이고 높이는 3~6m까지 다양합니다. 에코 챔버의 문을 닫은 경우에는 1.5초의 잔향시간을 가지지만, 챔버를 열면 2.2초까지 잔향 시간이 늘어납니다. 특히 저음 잔향의 경우 3초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인 프란즈(Franz Welser Most)는 루체른 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홀에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연주를 할 수 있다. 3악장이 시작될 때 피아니시모는 매우 잘 느껴졌으며, 가장 소리가 큰 파트에도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지 않고 언제나 명료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홀의 어떤 변화도 원하지 않는다. 정말 환상적인 홀이다."

이런 정도의 가변 성능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챔버가 필요합니다. 루체른 홀의 전체 체적이 18,500㎥인데, 이의 약 1/3에 해당하는 6,500㎥이 에코 챔버로 사용됩니다. 루체른 홀은 건축적인 음향 가변이 가능한 홀 중 가장 성공한 홀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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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챔버를 사용해 음향 가변이 가능한 루체른(Lucern)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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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챔버의 문을 열은 경우. 체적이 증가하며 잔향 시간이 증가한다.

루체른 홀 외에도 잔향 시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홀들이 있습니다. 텍사스 댈러스 마이어슨 심포니 센터(Meyerson Symphony Center)의 유진 맥더모트(Eugene McDermott) 콘서트홀, 필라델피아의 베라이존(Verizon) 홀, 영국 버밍엄의 심포니 홀 등이 있습니다.

댈러스의 유진 맥더모트 홀 역시 루체른 홀처럼 거대한 에코 챔버가 있습니다. 이 챔버는 약 10cm 두께의 콘트리트 문으로 여닫을 수 있으며 모터를 사용해 문의 개폐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높이 조절이 가능한 캐노피를 사용해 음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홀의 음향 가변성은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음의 잔향 시간은 증가하지만 중음이나 고음의 잔향 시간은 예상보다 변화가 많지 않습니다. 또한 주로 저음 잔향시간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변 된 음향이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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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챔버와 천정 캐노피를 조절해 음향 가변이 가능한 유진 맥더모트(Eugene McDermott) 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홈그라운드인 베라이존(Verizon) 홀 역시 에코 챔버 방식의 가변 잔향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크진 않습니다. 챔버를 열기 전 1.6초 정도의 잔향시간을 가지지만 챔버를 열면 고작 0.1~0.2 초 정도밖에 잔향 시간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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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챔버로 음향 가변이 가능한 베라이존(Verzion) 홀

유명한 건축 음향 학자인 레오 베라넥(Leo Beranek)도 '음향 가변이 가능한 여러 개의 홀이 있지만 루체른 홀을 제외하고 예측된 정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성공적인 음향 가변이 가능한 홀을 만들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홀은 다양한 장르와 빠르기의 곡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음향 가변성을 갖춘 홀을 설계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