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 음향학이야기 (5) 공간감

첼로가 직사각형 형태의 콘서트홀에서 독주 공연을 할 때 청취자에게 들리는 소리는 실제 첼로의 너비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립니다. 공간감으로 알려진 이러한 현상은, 일차적으로는 양옆의 측벽과 발코니에서 생기는 측벽 반사에 의해 생성됩니다. 이러한 공간감의 정도는 특정 콘서트홀이 다른 콘서트홀보다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1900년대 초 Sabine의 잔향 이론 발표 후, 1960년대 Beranek은 초기반사음의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으며 이후부터는 공간감에 대한 연구가 음향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968년 뉴질랜드의 음향학자인 Harold Marshall은 콘서트홀의 음향 품질과 공간감을 결정하는 데는 측면의 반사가 천정의 반사보다 더 중요하며, 측면 반사의 시간 차가 천정 반사보다 짧아야 한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Marshall은 본인의 연구 결과를 활용해 1972년 뉴질랜드의 Christchurch townhall을 매우 독특하고 거대한 측벽 반사판을 사용해 설계하였습니다. 이 홀은 공간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초기 측면 반사가 필요하다는 Marshall의 개념이 반영된 최초의 홀입니다. 청중을 둘러싸고 있는 18개의 매우 큰 반사판은 초기 반사음을 공간 전체에 균일하게 전달하며 소리에 완전히 휩싸인 듯한 공간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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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old Marshall이 설계한 Christchurch townhall의 거대한 측벽 반사판의 모습

이후 Marshall은 영국의 음향학자 Barron과 함께 1981년 LF(Lateral Fraction, 측면 반사음 비율)라는 음향 측정 파라미터를 만듭니다. LF는 홀의 전체 반사음의 양에 비례해 양쪽 측벽에서 생기는 반사음의 비율을 나타내는 파라미터입니다. 일반적으로 LF가 높아질수록 사람의 청각은 소리에 둘러싸인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공간감은 다른 측면에서도 연구되었습니다. 사람은 2개의 귀를 가지고 있는데, 이 2개의 귀에서 들리는 소리의 차이로 인해 공간감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청각은 머리를 가운데 두고 서로 분리되어 있는 두 귀를 통해 소리를 듣는데, 양쪽 귀의 모든 소리는 청취자의 뇌로 전달됩니다. 두 귀로부터 전달되는 서로 다른 정보를 뇌가 해석하면서 공간감에 대한 인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청취자가 야외에서 악기로만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그에게 도달하는 소리는 양쪽 귀에서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공간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콘서트홀 안에서 듣는 경우 벽면에서 생기는 반사음들이 다양한 시간차를 두고 양쪽 귀에 도달하면서 공간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반사음들이 청취자의 두 귀 사이에서 적절한 차이를 가지고 결합하며, 공간을 넓게 느끼게 되고 청취자는 해당 홀의 음향이 좋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양쪽 귀에 도달하는 소리의 차이를 측정하는 음향 파라미터를 양이상관지수 IACC(Inter Aural Cross Correlation) 또는 BQI(Biaural Quality Index)라고 합니다. 음향학자 Keet이 1968년 이 개념을 처음 제안했으며 이후로 Schroeder, Potter, Okano, Beranek 등 유명한 음향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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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CC는 더미헤드(Dummy Head)를 사용해 양쪽 귀에서 들리는 소리를 측정한다.

IACC는 0~1 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0이면 양쪽 귀에 같은 소리가 들린다는 의미이며 1에 가까워질수록 양쪽 귀에 다른 소리가 들린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우수한 콘서트홀에서 IACC는 0.5 이상의 값을 보였으며, 가장 높은 등급으로 손꼽히는 콘서트홀에서는 0.6 이상을 가집니다. 즉, 음향 품질이 우수한 홀에서는 두 귀로 들리는 소리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IACC는 콘서트홀의 음향 품질을 나타내는 가장 효과적인 지표 중 하나입니다. Beranek이라는 유명한 음향학자는 전 세계 50여 개 콘서트홀을 대상으로 지휘자, 연주자, 애호가, 평론가들에게 설문조사를 수행해 콘서트홀의 주관적인 순위를 정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주관적 순위와 객관적인 측정 지표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그의 저서 'Concert Halls and Opera Houses'(2004) 에서 조사했는데, 조사 결과 홀의 순위가 높을수록 IACC 값이 높았으며 홀의 순위가 낮을수록 IACC 값이 낮아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다른 어떤 측정 지표보다도 IACC가 더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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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홀 순위가 높을수록 IACC가 높아진다. -Beranek의 연구-

다음 편에서는 콘서트홀 내에서 음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장치들과 그 사례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