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속에서 만들어간 기억의 조각, 세민 '여린 잎' 발매

[월간 믹싱] 서울의 언더그라운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세민의 첫 정규 앨범 '여린 잎'이 오늘(10일) 발매됐다.

연대에 대한 신념으로 강제집행 당하는 상인, 해고당한 노동자 등 쫓겨난 사람들의 편에서 활동해 온 세민은 이번 앨범 '여린 잎'을 통해 현장의 경험과 자신의 불안, 고민을 음악으로 담아냈다.

'여린 잎'에는 세민의 음악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음악적 표현도 다르지만 주제도 변해왔다. 그만큼 연대와 투쟁에서 개인적인 서사까지 폭넓은 이야기가 앨범에 합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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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스마트협동조합

'꽃가루' '헤어지지 말아요' '희망'에는 장위동 철거민, 콜트악기 사태, 이산가족처럼 현대 사회의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궁중족발 연대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나', 반려견의 순수함을 보면서 작곡한 '포도'도 눈길을 끈다.

세민의 '여린 잎'은 멜론, 벅스, 바이브, 지니뮤직 등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들을 수 있다. CD구매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스마트스토어에서 가능하다.

아래는 '여린 잎' 발매에 대한 세민의 일문일답.

어떤 계기로 정규 앨범을 기획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솔로 정규앨범을 낼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제가 만드는 음악들이 이전과 결이 많이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전보다 조금 더 개인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까요. 20대 초반부터 파트너를 만나서 곡 쓰는 법을 배우고 같이 공연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와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 과정들이 제 노래들로 기록이 되어있더라고요.

제가 깨지고 다치면서 고민하던 부분들도 남아있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단순히 생각했던 부분들도 있고, 그럼에도 현실에서 연대했던 경험의 기록이 되어주는 노래들도 있었어요.

20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제 노래가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이것을 더 묵혀두면 나중에 묶어서 앨범 내기도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노래 하나하나가 다 너무 그때의 감정과 경험이 녹아있어서 개성이 강하다고 할까요, 하나로 합쳐지기 어렵다고 할까요. 그런데 좋은 기회가 들어와서 이 기회에 다 내버리자는 마인드로 부끄럽지만 앨범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경하와 세민'으로 주로 활동하셨는데, 솔로 앨범으로 발매를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음, ‘경하와 세민’은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긴 합니다. 해체한 거 아닙니다!(웃음) 예전에 ‘경하와 세민’으로 아주 활발히 활동했던 때는 서로의 사회적인 활동반경이 아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둘이 어느 현장이든 같이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뒤늦게 학업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학교도 복학하고, 심지어 대학원까지 와버렸거든요. 대학교는 다른 지역이라서 현실적으로 함께 다니는 게 무리였고, 대학원은 서울이지만 생각보다 학기를 소화하는 게 힘들어서 연대활동을 예전만큼 활발히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문제는 딱 붙어있어서 영향을 내내 받던 파트너랑 조금씩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점점 제 노래들이 약간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하고, 조금 더 저만의 색이 짙어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어쩌면 이제야 저는 저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뮤지션이 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여리고 부끄러운(!) 노래들이 쌓여있는 것들을 빨리 정리하고, 지금의 내가 만드는 노래들을 마음 열고 받아들여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이제 30대가 가까워져서 저의 표현의 영역이 달라진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주변정리를 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사회적 연대를 주제로 삼고 있는 곡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일단 모든 곡에 사실상 사회적 연대가 녹아있긴 한 것 같아요. 감정적인 연대라고 하더라도요. 가장 확실하게 현장 자체를 표현한 노래는 ‘꽃가루’에요. 당시 장위동에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투쟁하시는 집이 있었어요. 그때 장위 7구역에 연대하러 갔었는데, ‘경하와 세민’ EP 앨범의 표지사진에 있는 분도 장위동 철거 현장의 위원장님이셨죠.

제가 알기로 철거현장 집행은 동계에 이뤄지지 않아요. 겨울철에 집행했다가 갈 곳 없이 내쫓기면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일이고, 최소한의 안전 커트라인같은 느낌인 거죠. 그런데 아직 봄이 채 오지 않은 겨울에 집행이 왔었어요. 엄동설한에 행정의 편의성을 위해 계절을 자기들 맘대로 당겨버린 느낌이었어요.

당시 장위동은 포크레인들이 건물을 부수는 소리가 꽝꽝하고 들리곤 했고, 석면 가루가 날리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 현장들을 보고 새로운 집을 짓겠다고 지금 있는 집을 부순다는 게, 지금 있는 역사를 억지로 지워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덧입히겠다고 하는 게 참 이상하고 억울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본인은 집이 철거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아무리 재개발 찬성과 반대의 표가 몇 표밖에 차이 나지 않아도 집이 철거되는 것에 수긍해야 한다는 것이요.

이런 폭력적인 다수결의 원칙과 잘 이해되지 않는 철거현장, 그 삭막한 풍경에서 대체 자기 집을 지키는 이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길래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제 나름의 분함과 억울함을 담아 만든 곡이에요.

그때는 약간의 퓨전 국악처럼 만들어내려고 한 거 같은데, 경하의 편곡은 의도를 잘 살려주었지만, 제 보컬이 너무 옛날에 녹음해서 그런지 사실 잘 마음에 들지 않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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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창근

개인적인 서사가 들어간 곡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곡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쓴 모든 노래는 ‘꽃가루’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현장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현장에 연대하면서 느낀 저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어 ‘가져가세요’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과 연대하면서 제가 느낀 것들을 주제로 만든 것이고요. 조금 더 개인 서사의 농도가 깊은 곡은 ‘나’, ‘포도’ 인 것 같아요.

‘나’는 제가 경기도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관련해 서촌의 ‘궁중족발’이라는 가게에 연대할 때 느낀 점들을 쓴 노래에요. 학교에서는 성실하게 자기 공부 열심히 하는 대학생을 원하는 것 같고, 그에 맞춰 공부하는 제가 스스로 마음에 들기도 했어요.(사실 이때까지는 그리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지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는 사회현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궁중족발에 연대를 시작한 후부터는 현장의 일이 저와 무관하지 않고, 제가 사는 이 세상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점들이기에 결국 나의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제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행위가 연대라고 스스로 결론이 나버렸죠.

저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고, 연대도 열심히 하고 싶고, 둘 다 나에게는 꿈을 꾸는 행위이자 꿈을 실현시키는 행위였기에 경중을 따지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점점 성과 없이 둘 다 조금씩 놓치고 있었고, 스스로 너무 괴로워하는 ‘나’를 발견하고 이 노래를 쓰게 되었어요.

‘포도’는 진짜 간단하게 쓴 노래인데, 경하가 오랫동안 키운 반려견 ‘포도’랑 놀다가 생각났어요. 그때도 궁중족발에 한창 연대할 때인데, 세상 사람들이 다 ‘포도’처럼 순수하고 감정이 다 드러나면, 거짓말 하나도 못하면, 그러면 사회의 문제가 조금은 해결될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어요. 그러다가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게 되었을까. 역시 말이 문제일까. 이렇게 생각이 타고 가다가, 강아지들은 말을 안 해도 꼬리나 몸짓에서 어떤 감정인지 명확히 드러나 버리잖아요. 그렇게 사람들도 말을 못하면, 감정을 표현할 다른 투명한 방법이 생겨서 서로 더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사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다가 나온 노래인 거죠 뭐.(웃음)

그런데 지금의 의식의 흐름은 이렇게 단순하고 깔끔하게 이어지지 못하는걸 봐선 이것도 제가 20대 초중반에 가졌던 일종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노래인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여린 잎'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서 자라나고, 어른이 되어서도 또 다른 고민과 좌절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무엇이고, 내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고, 나는 뭘 위해 살고 있는지와 같은 부분이요. 앨범 ‘여린 잎’은 제가 송라이팅을 시작하면서 약간은 미성숙하고 순진무구한 시절들을 지나서 약간씩 세상과 나의 관계를 정립해가면서 얻은 경험들이 녹아있어요. 경하의 곡이라고 해도 그 안에 제가 겪은 경험들도 있고요. 저는 특별히 세상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들에 대한 저의 입장들이 알게 모르게 드러나 있는 것 같긴 하네요.

아무튼 ‘여린 잎’은 저의 아주 여리고 미성숙하고 단단하지 않던 스스로의 과정을 (부끄럽지만) 정직하게 표현해놓은 곡들입니다. 그 과정을 스스로 돌아보고, 다시 되짚은 음반이니까요. 좀 거창한 면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깨지고, 흔들리고, 슬퍼하고, 결국에는 나아가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내가 세상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해보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은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음악 활동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여린 잎’은 저의 과거 고민을 당시 어설프게나마 정리한 저 나름의 입장으로 표현한 노래들이에요. 그런데 게임에서 보면 보스 몬스터를 공략할 때 페이즈가 나누어지듯이, 그때의 고민들은 넘어섰는데, 또 다른 고민들과 또 다른 면에서 내가 흔들리는 과정을 겪게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나의 흔들림을 인정하면서도, 나의 상태를 정직하게 파악하는 모습이 그런 어려운 순간을 잘 이겨내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일종의 단단한 나를 만나는 방법이랄까요.

지금 제가 쓰는 노래들은 과거에 썼던 ‘여린 잎’의 노래들과는 또 다른 것 같아요. 관점도 그렇고 한층 더 스스로에게 정직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음에 앨범을 낸다면, 지금 쓰고 있는 노래들을 위주로 시간이 지나 조금은 단단해진 스스로의 표현을 담은 곡들을 모아 낼 것 같아요. '세민 2페이즈' 랄까요. 인생을 살면서 제가 몇 페이즈까지 변화를 겪을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당면한 2페이즈를 잘 갈무리해 담아볼 것 같아요.

실질적인 활동 계획은 아마 학교에 있지 않을 때는 주로 연대 현장이나 연대 모임의 행사에서 앨범을 소개할 것 같고요. 학교에 있을 때는 활동을 잘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네요. 최대한 노력해 봐야죠.(웃음)

제 목표는 제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그 변화들을 앨범으로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고요. 그 변화가 의미 있으려면 항상 세상을 관찰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자세는 저의 삶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라서 그 부분을 잃은 세민은 더이상 세민이 아니게 될 것 같고요. 방법이 달라지더라도 그 자세만은 유지해 나가면서 그 변화들을 기록해보고 싶어요.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저의 기록들을 보면서 외롭지 않게,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삶의 모양을 잡아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