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릴 태워주는 것은 지하철뿐,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순간

1991년 개관해 32년간 대학로에서 연극, 뮤지컬, 콘서트를 진행해 온 소극장 학전이 문을 닫는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공간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리모델링 후 민간 위탁 운영을 통해 학전 공간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더 이상 학전의 자랑과 같았던 소극장 뮤지컬을 감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조승우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거쳐 간 '지하철 1호선'은 작년 12월 30일 마지막 공연을 선보였다. 훗날 어디선가 지하철 1호선이 다시 런칭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194석 규모의 소극장 '학전 블루'에서 라이브 밴드로 연주되는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line1 1
사진제공=학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극장에서 라이브 밴드의 문제

소극장 뮤지컬에서 라이브 밴드를 사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장비와 연주자에 대한 비용 문제는 둘째치고, 뮤지컬에 라이브 연주를 넣기 적합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소극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뮤지컬은 음악만 듣는 공연이 아니라, 배우들의 노래, 내레이션에 음악이 밸런스를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앰프, 드럼 등 장비도 없는 곳이 많다. 메인 스피커는 겨우 음악 재생 및 무선 마이크 연결만 가능할 정도의 시스템만 갖춰져 있으니 연주자가 자신의 연주를 확인하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없다. 따라서 기타나 베이스는 아예 앰프를 사용하지 않고, DI나 멀티이펙터를 사용해 바로 메인 콘솔로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line1 2
사진제공=학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브 연주를 해본 사람이라면 실물 앰프 없이 연주할 때 모니터링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얼마나 연주가 어려운지 알 것이다. 일렉 기타 소리는 앰프가 없으면 쇠줄 소리 밖에 나지 않으니, 필자 역시 그저 기타 소리를 상상하면서 드러머의 손동작을 보고 박자를 맞춘 적도 있다.

학전의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진 음향

이번 지하철 1호선의 연주도 앰프 없이 연주됐다. 확실히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처럼 실제로 밖으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있는 어쿠스틱 계통의 악기가 일렉트릭 기타, 일렉트릭 베이스에 비해 훨씬 생동감 있게 들렸다. 그럼에도 일렉트릭 악기들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것은 학전 블루 소극장의 오랜 노하우일 것이다.

실제 연주와 사전에 만들어둔 드럼 음원(MTR)이 동시에 재생됐는데, 어쿠스틱 악기라면 몰라도 일렉트릭 악기들은 연주자의 연주가 너무 정확했는지(?) 실제 연주가 아닌 MR을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만약 밴드에 비치는 조명이나, 밴드가 무대 위쪽에 배치된 구조가 없었다면 라이브 밴드가 존재한다는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다만 지하철 1호선을 'n회차' 감상한 사람이라면 음악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실제 드럼이 사용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필자가 몇 년 전 감상한 지하철 1호선은 이번의 마지막 공연과 동일한 악기 구성이었지만 또 다른 색다른 느낌이었다. 편곡이 동일해도 다른 연주자들의 라이브 연주를 통해 매번 다른 음악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지하철 1호선의 특징이었다.

line1 3
사진제공=학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하철의 이야기, 서울의 이야기

지하철 1호선의 스토리가 너무 옛날이야기라는 지적도 있다. 지하철 1호선의 시대 배경은 IMF 사태이며 제비족을 찾아 서울에 온 연변 여성, 청량리 588, 지하철 잡상인, 노점상 철거 문제, 지하철 투신 등 2023년 현재에는 전처럼 쉽게 접하기 어려워진 장면들이 등장한다. 김민기 학전 대표 역시 지하철 1호선은 "20세기 말 서울 시민들의 이야기"로 "그 시절의 풍속화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는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도, 재고 처리를 한다며 싼 가격에 물건을 파는 잡상인도 보기 어렵다. 스크린 도어의 설치로 투신자살 사건도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단속이 늘어나고 시설이 교체됐다고 그들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을까? 숨겨지고 잊혀지며 다른 어딘가로 터전을 옮기고, 목숨을 끊을 다른 장소를 찾았을 뿐이다.

line1 4
사진제공=학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하철 1호선은 근대화된 대한민국의 도시 서울의 이야기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통해 98년 서울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표현했다. "다시는 지하철을 타지 않을 거예요"라며 서울을 떠나려던 선녀는 결국 이곳의 빈민, 소수자와 함께 남기로 한다. 그래도 "우릴 태워주는 것은 지하철 밖에" 없기 때문에...

박찬울(월간 믹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