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서 시작한 '내 음악' 찾기, 작곡가 박혜원

'재즈'에는 진보적인 이미지와 보수적인 이미지가 공존한다. 즉흥 연주와 아티스트의 독창적인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이 있는 반면, 재즈를 구성하는 요소와 전통에 대한 다소 '엄격한' 규정을 두기도 하는 것이 재즈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박혜원은 재즈 오케스트레이션과 빅밴드 재즈를 전공으로 하는 '전통' 재즈 작곡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발매한 'Take the "A" train'처럼 일렉트로닉 장르를 결합시키면서 자신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음악에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뉴욕과 보스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즈 작곡가 박혜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빅밴드, 재즈 오케스트라, 혹은 스몰 재즈 앙상블 등을 작곡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렉트로닉 뮤직 프로듀서로서도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쩌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첼로, 플룻 등을 배우는 등 부모님께서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 부모님께서는 원치 않으셨어요(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하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했었어요. 당시에 지금까지도 연락드리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상담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 나온 결론이 ‘지금도 음악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이때 전공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주변에서 음악은 취미로 해도 된다는 말을 많이 하셨지만 저는 제 음악적 실력이 전공 이상이었으면 하는 갈망이 컸어요. 하지만 클래식을 전공하기에는 많이 늦었고, 음악교육학과를 갈까 생각도 했지만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하기보다는 뮤지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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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박혜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렇게 실용음악학과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듣고 한국 대학입시를 준비했지만, 대중가요를 위주로 다루는 한국 실용음악과 작곡 전공과는 제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음악적 시야가 넓지 못해서 제가 정확히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단순히 피아노를 더 잘 쳐야겠단 생각으로 재즈 피아노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재즈 앨범들을 많이 들었는데, Count Basie와 Sarah Vaughan이 같이 작업한 'Music For Lovers'란 앨범을 통해 '아 이게 빅밴드라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실 한국 중고등학교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주로 다뤄서 재즈에 대해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그전에는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빅밴드라는 재즈 오케스트라가 저에겐 생소하면서도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해줬어요. 그래서 빅밴드 작곡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다가 미국 버클리 음대에 재즈 컴포지션 전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재즈 연주자는 꽤 있지만 재즈 작곡가는 좀 생소한 것 같기도 합니다.

재즈라고 생각하면 보통 Trio나 Quartet을 많이 생각하시는데요. 또 아직까지도 빅밴드라는 것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고요. 그래서 재즈 작곡이 어떤 건지 생소한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재즈 컴포지션이라고 하면 보통 빅밴드나 재즈 오케스트라처럼 좀 더 규모가 큰 앙상블 작곡을 말하곤 해요.

Trio나 Quartet처럼 작은 규모의 작곡을 하면 보통 멜로디와 코드가 그려져 있는 리드싯만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요. 빅밴드 작곡을 하면 악기가 최소 16개 정도는 들어가기 때문에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재즈 작곡이라고 하면 재즈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Take the "A" train'에 미디를 적용해 새로운 편곡으로 싱글을 발표하기도 하셨는데요. 언제부터 미디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사실 미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팬데믹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버클리 학사 때 Jazz Composition Department의 Greg Hopkins 교수님이 역사적으로 디렉팅하시는 'Berklee Concert Jazz Orchestra'에서 감사하게도 마지막 두 학기 동안 작곡가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요.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 콘서트로 진행했었거든요. 그때 Draft 파일을 다 미디 파일로 보냈었는데...소리가 너무 이상한 거예요(웃음). 그래도 클래식 오케스트라는 미디 소리도 어느 정도는 괜찮은데, 재즈를 미디 악기로 찍어버리니까 무슨 노래방 반주 같아서 이상했어요.

그때부터 미디 악기 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제가 재즈 작곡가로서 어떤 앨범을 낼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사실 오케스트라 앨범 만들면서 전부 사비로 충당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미디 사운드의 퀄리티를 향상시켜서 라이브 악기와 접목해 보면 저만의 사운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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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박혜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ake the A train에는 재즈 앙상블적인 요소도 있지만 일렉트로닉 장르도 결합되어 있는데, 어떻게 재즈를 일렉트로닉으로 편곡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미디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제 생각은 '재즈'라는 틀에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Grace Kelly의 앨범을 듣고 떠오른 생각이, 굳이 재즈 음악일 필요는 없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모던재즈를 들으면 어디까지가 재즈인지 모호해지기도 하고, 재즈 작곡가로서 곡을 쓰면 결국 그게 재즈인 거잖아요. 그래서 재즈 작곡가로서, 재즈 연주가들과 곡을 만들면 그것도 재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곡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재즈는 제가 학문적으로 학교에서 배운 음악이고, 일렉트로닉 음악은 학교 밖에서 스스로 익힌 장르라서 그런지 제가 느끼는 부담감이 다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재즈는 전공이고 제가 아는 것이 좀 더 많다 보니 저 스스로 기준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선뜻 남들에게 보이기 어려웠는데, 이런 일렉트로닉 앨범은 ‘내 귀에 좋으면 좋은 거지’ 하는 식으로 즐겁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맨 땅의 헤딩하듯 홈레코딩을 시도했고 직접 믹싱, 마스터링까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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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박혜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ake the A train 작업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곡 녹음을 스튜디오에 가서 할지, 저 스스로 시도해 볼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믹싱, 마스터링도 엔지니어를 섭외할까 생각해 봤지만 저 스스로 미디 작업부터 시작해 끝까지 작업을 완성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대해서는 아예 지식이 없었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로서 한 걸음 내디뎌보고 싶은 마음에 모두 직접 해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몇 달간은 어떤 마이크가 적합할지, 녹음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 믹싱·마스터링에서 어떤 플러그인을 쓰면 좋을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해야 할지 등등 집에서 하루 종일 검색만 했던 것 같아요(웃음). 사실 성격상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을 좋아해서 딱히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푹 빠져서 즐겼죠. 또 버클리를 같이 졸업하고 지금 LA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한테도 귀찮을 정도로 많이 물어봐서 그 친구한테 정말 감사하죠.

연주자는 같이 석사로 맨하탄 음대를 졸업한 친구들인데, 실력도 좋은 친구들이지만 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같이 작업하게 되어 녹음 과정 동안 즐거웠습니다. 제 방을 녹음실처럼 만들어 작업했는데, 원래 종종 집에 놀러 오던 친구들이라 더 편하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사실 원래 전공인 재즈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할 때면 인원도 많고 시간도 쫓기고 또 모든 인원을 제가 통솔해야 된다는 부담감에 항상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음악 색깔도 많이 다르고, 또 좋은 사람들과 편안한 장소에서 작업해서 정말 즐겁게 음악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재즈 스탠다드 곡을 일렉트로닉 장르와 결합시키는 시도에 대한 고민거리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은 저만의 장르를 찾는 것이 목표였는데, 막상 이런 퓨전 장르를 해보고 나니 결국 ‘어디에도 속할 수 없구나’ 하는 우울함이 조금 왔던 것 같아요. 앨범을 재즈 뮤지션들에게 들려주면 당연히 일렉트로닉 쪽이라고 생각 하지만, 또 재즈 뮤지션이 아닌 분들에게 들려드리면 재즈라고 생각하셔서 혼란이 많은 앨범인 것 같습니다(웃음).

어떻게 생각하면 장르를 일렉트로닉 대 재즈, 50 대 50 반반으로 딱 나눠서 이런 의견들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한데요. 언젠가는 어느 장르로도 형용할 수 없지만 대중적이고 또 나름 저의 음악적 견해도 들어있는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독창성과 대중성의 밸런스를 찾는 게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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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즈란 것이 대중적인 음악과는 거리가 좀 멀잖아요. 보통 카페나 길거리에서 나오는 대중적인 재즈를 생각하면 보통 스탠다드 스윙 재즈를 많이 생각하시는데 재즈에도 종류가 매우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스탠다드 스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즈에 대중적인 색을 입히고 싶다는 생각에 퓨전 장르로 도전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이렇게 재즈와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퓨전 장르를 해보니 그만큼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 믹싱 스킬인 것 같아요. 사실 재즈 앙상블을 녹음할 때 저는 연주자의 연주와 악보에만 온 신경을 쓰고, 레코딩은 엔지니어에게 맡기면 되거든요. 하지만 이런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면서 녹음을 하다 보니 그 레코딩들을 섞는 방법도 제가 만드는 음악의 레시피 중 하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일렉트로닉 재즈 퓨전 프로듀서로 발을 내딛는 만큼, 믹싱이 저의 아이디어를 곡에 주입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분야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준비 중인 작업 및 활동 계획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재즈 오케스트라가 미국에서 발생한 음악이기도 하고, 저도 미국에서 학교를 나와서 아직까지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미국에서 지내며 제가 재즈 작곡가로서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접하고, 또 일렉트로닉 음악도 꾸준히 작업해 저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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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저의 빅밴드를 선보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미국에서 레코딩한 영상이나 음원 이외에 한국에서 라이브로 빅밴드를 연주한 적이 없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제가 미국에서 지내며 성장해 온 과정의 곡이 담긴 콘서트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올해는 미국 BMI Jazz Composers Workshop에 참가하게 됐어요. 매주 워크샵에 참가하고 있고, 매달 마지막 주에는 리딩 세션이 있어 그동안 썼던 빅밴드 곡들의 사운드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6월쯤 워크숍에서 하는 콘서트에서 곡을 연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재즈 이외에 퓨전 싱글 앨범들도 꾸준히 나올 계획이에요. 두 번째 싱글 앨범을 지금 마무리하는 단계이고 미국에서 먼저 발매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