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웨인 크란츠(Wayne Krantz)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한 적이 있다. 워낙 독보적인 스타일의 연주자였기에 마스터 클래스 당시 어릴 적 영향받은 뮤지션, 존경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구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다. "팻 메스니를 무척 좋아해서 자주 듣고, 카피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 연주에 대해 '팻 메스니 같다'고 말한 것을 듣고 그 뒤론 단 한 번도 팻 메스니를 듣지 않았다."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연주가 존경하는 사람의 연주와 닮았다는 것이 감동이기도 하면서 절망의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가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말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음악계에서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유희열 씨의 표절 문제 때문이다. 본인은 고의적 표절 의도가 없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으며, 표절 대상이 된 류이치 사카모토 역시 '표절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럼 '표절이 아니다'로 결론을 지으면 될 것을, 대중들은 여전히 계속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은 곡에서 어쩔 수 없는 유사성이 계속 들리기 때문이다.
설령 표절이 아니라고 해도, 유희열의 음악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과 닮은 구석이 많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드러나 왔다. 그것은 유희열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워낙 좋아했고 또 평소에 곡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음악을 100번 반복해서 들어본다고 치자. 그리고 비슷한 느낌의 코드 진행, 템포, 악기 구성 위에 멜로디를 만들어보자. 단번에 비슷한 멜로디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마 자신의 음악 스킬을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듣고 또 듣다 보면 비슷해지는 것이 본성이다. 본성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멜로디가 '류이치 사카모토스럽게' 나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마음이 거짓이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에 자연스레 따라가는 것 그 자체는 문제도 아닐뿐더러, 옳고 그름을 심판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좋아한 것'의 결과물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다. 우리의 '카피라이트' 제도는 음악을 무형의 자산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반대의 입장에서, 만약 우리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입장이라면 사실 매일 전 세계로 자신의 곡을 스트리밍시키면서 본인만의 '비법'을 유출하고 있는 셈이다. 음원 시장에 곡이 공개되는 순간 멜로디와 화성으로 분석되는 노하우, 비법들이 전 세계 작곡가들에게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이다. 물론 쉽게 카피되지 않는, 세월과 경험이 만들어내는 특수한 작곡가 고유의 비법은 아무리 연구해도 카피가 안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나 쉽게 카피당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까지 한순간에 대중에게 공개되어 버린다.
이렇게 좋은 비법을 공개해놓고 따라 하지 말라니. 작곡가로서는 이만큼 억울한 일도 없겠다. 그러니 아예 존경하는 아티스트를 다시는 듣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작곡가에겐 변명의 기회가 없다. 표절의 의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한 (혹은, 존재할 수 없는 한) 저작권을 침해받은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제도적으로 작곡가의 표절 여부를 심판할 순 없다. 그러니 동시에 대중 개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비난도 금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예술가란 자기 작품의 평가에 대해 무기력한 존재 아닌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표절을 피하고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청취 습관을 제한하거나,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작곡 요소를 선택하거나, 새로운 기법 및 실험, 공부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서, 필, 감각'에 의존한 작곡은 필연적으로 표절이 되기 쉽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에 집중하기보다, 그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 집중해보는 것은 또 어떨까. 결국, 우리가 만드는 음악은 '나'의 기록이니 말이다.
글 발행인 박찬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