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추억하며 : Jeff Beck, Tony Bennett, Wayne Shorter

지난 2023년 동안 많은 음악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제프 벡, 류이치 사카모토, 아마드 자말 같은 연주자를 비롯해 티나 터너, 토니 베넷,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등 음악계에 족적을 남긴 보컬리스트들의 별세 소식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며 계속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뮤지션들이 어느새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절로 숙연해진다. 추모하는 마음으로 필자의 기억 한 자리를 차지했던 뮤지션들을 소개한다.


제프 벡 Jeff Beck

'3대 기타리스트'라고 말하면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을 꼽는다. 사실, 필자는 처음엔 제프 벡의 연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스타일 때문에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다소 투박한 연주 스타일이 취향에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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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andy Hall, used under CC BY 2.0

처음 제프 벡의 연주에 눈을 뜬 것은 Stevie Ray Vaughan과의 라이브 영상이었다. 이 영상에서 SRV는 명성에 걸맞게 예상한 대로 불같은 솔로를 보여준다. 이렇게 열정적인 솔로 다음으로 트레이드를 받는 것은 꽤 부담되는 일인데, 제프 벡이 어떻게 받아쳤는지 보자.

제프 벡에게는 묵직한 한 방이 있다. 톤 메이킹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사람의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달력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연주자다.

기타에서 톤이란 단순히 장비나 세팅 값의 차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프 벡은 연주자가 떠올린 영감에 어떻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지를, 어떻게 기타에서 드라마틱한 톤 변화를 이끌어 내는지 잘 보여준 사람이었다. 위의 'Little Wing'은 볼륨 노브 하나로 엄청나게 다양한 차이를 만들어주는 영상이다.

제프 벡의 대표곡으로 많은 사람들이 'Cause We've Ended As Lovers'를 꼽는다. 'Led Boots'같은 블루스록 기반의 넘버들도 좋지만 나를 매료시킨 제프 벡은 차분한 발라드곡에서 나오는 풍부한 감정 표현이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Goodbye Pork Pit Hat' 버전이라고 생각하는 제프 벡의 로니 스콧츠 라이브 영상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토니 베넷 Tony B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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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om Beetz, used under CC BY 2.0

오래된 재즈 스탠다드는 정확한 멜로디를 알기 어렵다. 마일즈 데이비스처럼 인기있는 특정 인물의 버전이 '공식 버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명확하게 정해진 연주가 반복되기 보단 매번 변주되고, 연주자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원래 재즈의 특징이다.

하지만 어떤 스탠다드 곡을 처음 접할 때는 이 곡이 어떤 곡인지 파악할 수 있는,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버전이 필요하다. 필자에게 악기 연주자의 레퍼런스는 마일즈 데이비스요, 보컬에 있어서는 바로 토니 베넷이었다.

비슷하게 남성 보컬리스트의 레퍼런스로 꼽히는 멜 토메나 프랭크 시나트라도 있지만, 필자는 깔끔한 멜로디 전달력과 더불어 스윙이라는 근본을 놓치지 않는 토니 베넷을 가장 선호했다. 그만큼 수많은 스탠다드 곡에는 토니 베넷 버전이 존재한다.

옛날에 녹음된 재즈 스탠다드를 듣다 보면 리얼북에서 볼 수 없는 '오프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파트들은 옛날 브로드웨이 작품에서 사용되던 것들인데, 위의 'The Shadow Of Your Smile'이나 'Night And Day' 같은 곡의 토니 베넷 버전에서는 오프닝을 들어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한다.

비록 재즈 스탠다드가 보컬보다 악기로 더 많이 연주되고 있지만, 원곡의 보컬 멜로디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색소폰이나 피아노로 연주하던 스탠다드 멜로디를 토니 베넷이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을 들어 보면 그 섬세한 표현 방식에 깜짝 놀라게 된다.

토니 베넷이 부르는 발라드 스탠다드에는 재즈 보컬의 진가에 눈뜨게 해주는 매력이 가득하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나 'I Fall In Love Too Easily'도 정말 좋지만, 여기서는 'Emily'를 추천하고자 한다. 아직 Emily를 악기 버전으로만 들어봤다면 꼭 토니 베넷의 Emily를 들어보길 권장한다.

웨인 쇼터 Wayne Shorter

웨인 쇼터는 재즈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을 이름이다.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시작해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에서 활동했고, 조 자비눌과 함께 웨더 리포트를 결성하는 등 재즈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에 이름을 올린 색소포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웨인 쇼터는 소니 롤린스, 존 콜트레인의 영향을 받은 만큼 테너 색소폰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한 'In A Silent Way' 앨범을 기점으로 다양한 앨범과 라이브에서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음악적 스타일도 변하기 시작했다. 1969년 작 'Super Nova'는 후기 마일즈 데이비스와 웨더 리포트에서 들을 수 있었던 당대 퓨전 재즈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던 시기의 웨인 쇼터는 존 콜트레인의 영향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Night Dreamer'(1964), 'JuJu'(1965) 에는 존 콜트레인과 함께하기도 했던 맥코이 타이너와 엘빈 존스가 함께 해 콜트레인의 향수를 느끼면서 동시에 웨인 쇼터 만의 하드 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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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Bruno Bollaert, used under CC BY 2.0

웨인 쇼터는 변화하는 뮤지션이었다. 초창기 개인 앨범에서는 지금까지도 스탠다드 곡으로 활발하게 연주되는 'Black Nile' 'Footprint' 등 스탠다드의 어법을 따라간 곡들을 선보였다면, 후기 웨인 쇼터는 조 자비눌, 존 맥러플린, 산타나, 허비 행콕, 브래드 멜다우, 에스페란자 스팔딩 등과 함께 연주하며 퓨전 재즈 활동을 이어 갔다.

한편 웨인 쇼터는 똑같이 작년에 세상을 떠난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와도 인연이 있다. 2020년에 발표한 티나 터너의 자서전 'Happiness Becomes You'에 따르면 남편 아이크 터너의 가정폭력으로 힘든 시기에 웨인 쇼터가 6개월간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해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