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이 많은 ‘N잡러 뮤지션’ 고유연

모든 대학이 그렇듯 '취업률'은 학교의, 학과의 핵심 지표이다. '거기 졸업하면 먹고 살 수는 있니?'라는 질문의 답인 셈이다. 다만 예술대학의 경우 취업률을 계산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일단 취업의 방향부터가 제각각이다.

아티스트 활동부터 시작해서 학원 강사, 음악 연구, 유관 산업의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비롯해 작곡가가 오디오 엔지니어링을 배우고, 피아니스트가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등 이 모든 것을 '직업을 얻는' '취직'이라고 친다면, 아마 취업률이 100%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N잡러'라는 말은 다재다능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렇게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 마찬가지로 음악가의 다양한 진로 갈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초조함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기대와 설렘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분야의 활동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는 고유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어린이청소년연극단체의 악사인 동산(닉네임)이자 '미완결'이라는 그룹의 멤버이며 꾸준한 창작가를 꿈꾸는 고유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동네 피아노 학원을 오래 다녔어요. 처음엔 엄마가 다니라 하니까 다녔는데 배우다 보니 저랑 잘 맞았던 거죠. 나중엔 엄마가 학원을 등록해 주지 않으면 제가 먼저 등록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어요.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처음 보는 악보 읽는 걸 제일 좋아해요. 초견이라 하죠. 여러 작곡가 이름을 가진 학원의 연습실에 들어가 손에 잡힌 아무 악보나 펴서 한참 읽다 나오곤 했어요. 그렇게 꾸준히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다 17살이 되어 여느 때와 같이 아무 가요 악보를 한참 읽는데 대뜸 궁금증이 생긴 거예요. "C가 도미솔인건 알겠는데, 그게 왜 C코드지?" 궁금증을 풀려면 누군가 실용음악학원에 가면 된다는 정보를 주었고 곧바로 취미반에 등록해 조금씩 코드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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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유연

그러다 어느 날 주드 로, 나탈리 포트만,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하는 'Closer'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천천히 마주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라는 곡이 같이 나왔는데 당시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죠. "이렇게 흡인력이 있는 게 음악이라면... 나도 해봐야겠다!"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패기 넘치는 고등학생이었다 싶네요. (웃음) 당시엔 그 영화와 음악이 나만 아는 건 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 엄청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요. 아마 저처럼 홀린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요?

음악에도 여러 가지 분야가 있을 텐데 현재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가요?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야는 연극 단체의 악사 일이에요. 단체의 인원이 많은 편은 아니라 스태프 일도 겸해서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분야로는 레코딩, 공연 세션과 더불어 앞서 소개한 그룹 '미완결' 활동도 유지 중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취미생 대상으로 피아노 레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N잡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원래는 음악 전공 관련일에 소속된 기간이 길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합주, 무대 경험도 많이 쌓았고 대학도 관련 학과를 졸업했기에 레코딩이나 라이브 연주, 세션, 앨범 발매 등 음악 관련 활동에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배우려는 학생에겐 늘 기회가 열려 있기도 했지만 저 스스로 일거리를 물어오는 경험도 있었어요. 워낙 일 벌이기를 좋아해서 무대 연출, 기획도 직접 해보고 홍보를 통해 관객을 모아서 무대를 올리기도 했죠. 또, 싱어송라이터 원태림과 같이 노래하고 싶어서 '미완결'이란 팀도 꾸리며 3개의 앨범을 발매하고 함께 기획, 프로듀싱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연극 단체에 들어오게 된 건 졸업 이후의 일이에요. 코로나가 막 시작되는 시기였던 2020년에 저는 대학교 4학년이었어요. 그때 모두가 그랬겠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대학 졸업반이었으니까요. 불투명한 미래를 상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자취방에서 한참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제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넘겨주자. 내가 가진 능력을 쓰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 독립을 준비하며 일터를 찾을 때 만난 곳이 지금 속해있는 어린이청소년연극단체였습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다음 세대를 만날 수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곳을 만나게 되었어요. 어느덧 1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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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유연

싱어송라이터 활동이나 '미완결' 팀의 활동도 소개해주세요.

저는 스스로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기엔 아직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제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해온 시간과, 노래를 쓰고 부르는 시간이 비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곡에 제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욕구는 강한 편이죠.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지만 그걸 창작물로 만드는 건 개인의 능력이잖아요. 그 능력이 곧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면 전 아직 '활동가'라기보단 '수집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능력을 수집하는 중이죠.

'미완결'의 활동은 방금 말한 싱어송라이터 활동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선 함께하는 이가 있어요. 싱어송라이터 원태림이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고, 가장 많은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이기도 해요. 2019년에 팀 결성을 제안했고 다행히(!) 결이 맞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어요. 다만 당분간은 팀 '미완결'보단 '싱어송라이터 원태림, 건반 연주자 고유연'의 모습으로 더 찾아뵐 듯해요. 그렇다고 '미완결'이 해체되는 건 전혀 아니고요. (그럴 마음도 없고요)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언제든 금방 들려드릴 수 있도록 성장해서 돌아오려고요. 기대되시죠? 전 기대돼요.

어린이연극단체에서 하고 있는 ‘악사’라는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제가 속해있는 단체는 연극이 진행될 때 악사가 무대 위에서 라이브 연주를 한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해요. 또, 공연 대부분이 찾아가는 공연의 형태라 모든 소품, 음향장비, 조명을 스타렉스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녀요. 아이들이 있는 곳에 직접 가 무대를 손으로 만들어내곤 합니다.

악사는 단체 안에서 극에 어울리는 곡을 작곡, 연주하고 공연장에서는 음향 셋업을 담당해요. 학교의 대강당, 체육관 그리고 문화센터, 도서관, 예술회관, 소극장 등등 수많은 공연장의 각기 다른 음향장비를 만납니다.

곡을 작곡하고 동료 배우분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대부분 회사 연습실에서 이루어져요. 이전에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연습이 이루어지는데요. 음악 전공생들의 합주는 보통 정해진 악보가 있고 그 안에 코드와 마디, 멜로디, 섹션, 송폼 등이 있죠. 각 파트의 연주자들은 악보를 보고 자신의 파트를 도맡아 합을 맞추게 되는데, 제가 있는 연극 단체의 연습은 그렇지 않아요. 우선 극이 있고 연기하는 배우가 있으니 씬(scene) 위주로 런(run)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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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유연

악사는 씬에 맞는 곡을 즉흥으로 연주하기도 하고 미리 작곡해가기도 해요. 참고로 단체의 악사는 저 한 명뿐이라 피아노로만 작업합니다. 미디 작업은 단체가 가진 색과 조금 다른 결이라 하지 않는 편이고, 어쿠스틱 사운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피아노 연주는 씬의 호흡에 따라 곡이 느려지기도, 빨라지기도 하고 무대 크기에 따라 길이가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합니다. 늘 어떤 템포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배우의 연기 호흡에 맞춘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또 극의 감정과 연출을 극대화하되 배우의 연기를 앞질러버리거나 과해서는 안 되죠. 화자의 대사와 동시에 나올 경우에는 연주 볼륨을 확 줄이기도 하고요. 건반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무너지는 바위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확실한 건 단순히 피아노만 연주하는 것과는 결이 달라요. 배우의 대사를 같이 읊조리면서 숨을 들이마시기도 하고 움직임에 따라 함께 호흡하기도 합니다. 연극 분야의 악사는 또 다른 아가미로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드는 작업과 악사 활동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자신의 이야기'의 존재 여부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웃음) 작곡이나 싱어송라이터는 하고 싶은 말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도저히 곡을 쓰지 않고서는 해소가 안 될 때. 갑자기 떠오르는 선율이 꼬리 자를 생각이 없을 때. 말로 하면 재미없는데 노래로 하면 유쾌할 때. 곡을 쓰고 부르는 순간은 결국 자신의 모든 경험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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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유연

악사의 경우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작품 혹은 타인의 이야기에 설득력을 보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세션도 마찬가지고요. 악사는 극에 초점이 있고 세션은 절 섭외한 사람에게 초점이 있다고 봐야겠죠.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모든 능력치를 끌어올려서 최고의, 최선의 연주를 보여주는 거예요. 클라이언트가 따로 있다면 요구사항에 맞춰주면 되고요. 그 안에서 의견을 내기도 하고 서로 조율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설득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 또한 제 능력이죠. 더 나은 갈래를 보여주는 쪽으로요.

특히 악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달랐던 점을 꼽자면 연극 단체의 주 관객층이 어린이라는 점이에요. 대중음악은 보통 성인들이 즐겨 듣고 공연을 보러 오죠. 어린이연극은 어린이들이 부모님 혹은 친구들과 함께 보러 오곤 합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극이니까요. 공연을 볼 때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아주 과감히 외쳐요. “재미없어!” “으하하하“ “저게 뭐야~~” 하는 식으로요. 등장인물이 힘들어 보이면 손뼉 치며 응원하기도 하고요.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힘껏 “저기!!! 뒤에 있어!!”라고 소리치기도 해요. 가끔은 무대와 관객 사이의 경계심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랄까요? 무대 위 약속이 빚어내는 상상을 관객이 그대로 믿어줄 때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되곤 합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있어 가장 솔직하고 고마운 관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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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유연

앞으로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더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싱글 앨범도 발매하고 싶고요. 재즈 공부도 더 하고 싶고요. 제가 쌓아둔 기록이 어떻게 하면 음악이 되는지 탐구해보고 싶고요. 작업실에 콕 박혀 있고 싶으면서도 무대 위에서 제 쓰임을 확인받고 싶고요. 새로운 작업자들도 만나보고 싶고, 그들에게 좋은 동료가 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저는, 꾸준한 창작가가 되고 싶어요. 이런 욕심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음악이 제 원동력이라는 셈을 증명하니까요.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발견하는 감각을 잃지 않은 채로, 매일 수련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모든 일에 도전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