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from S] 어쩌면 이 분열감은

최근, 일정을 마치고 바로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초행길은 잔뜩 긴장하고 움직이는 편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지하철 안에 있던 나를 보았다. 환승을 하기 위해서 몇 개의 표지판을 봤었는지, 가는 방향에 맞게 몸은 열차에 실었는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새로운 길을 걸으며 낯섦을 느끼지도 않고 말이다. 늘 가던 길을 무의식적으로 간 것과는 다르게 아예 기억이 삭제된 기분이었다. 내가 그날 어떻게 움직였는지 언제 지하철에 갈아탔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쁜 일정에 기억들이 뒤엉켜 마구 어질러진 것 같을 때는 있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참 묘했다. 돌이킬 수 없는 걸음과 같은 시간 속에서 나를 놓친 것처럼 말이다.


음악을 마주한다는 것은 깊은 숲속에 숨어있는 맑은 샘에 모습을 비춰보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면 내 모습도 뒤틀린다. 돌이라도 던져보면 내 모습에 자국 하나 남는다. 맑은 샘에는 나의 예전 기억들, 파편과 같은 순간들, 이뤄지지 못한 수많은 결심들이 담겨 있다. 그 순간순간의 나는 또 다른 내가 만들어낸 걸음들이다. 그를 따라가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이 내가 음악을 통해 하고 있는 일들이다.

김지운 감독님의 '장화, 홍련' 속 수연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분열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주변 인물들에게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고, 혹은 직접 그들이 되어 살아간다. 이게 진짜 일어났던 일이었는지,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 없게끔 혼탁하게 섞여 있다. 수연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은주의 경고를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던 과거 그 순간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던 몸부림들이 가슴 아팠다. 살기 위해 만들었던 수연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봤다.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온 걸까, 어떻게 아찔했던 그 순간들을 버텨온 걸까. 돌이켜보면 수연처럼 내가 만들어냈던 '또 다른 나'들의 움직임이었으리라.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수많은 나를 죽을 때까지 천천히 알아가고 싶다. 그들을 온전하게 끌어안고, 인정하고, 내치지 않겠다. 어쩌면 이 분열감은 나를 끝없이 구원해왔던 것은 아닐까 안도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

나의 안녕을 바라며 내가 나에게 부르는 자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