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에서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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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에서 돌아온

"아나필락시스 쇼크(anaphylactic shock)"

특정 항원에 의한 전신적으로 심한 즉시형 알레르기 반응. 항원에 노출된 후 수분 내에 가려움증, 두드러기, 부종, 기절(실신),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제1형 면역반응으로 일어나며 페니실린 쇼크, 벌 독 알레르기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난 세파클러라는 항생제에 약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다. 20대 초 보라색 캡슐로 된 항생제만 먹으면 1~3분 정도 온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나다 괜찮아지곤 했는데,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니라 항상 그 항생제를 피해서 처방 받아왔다.

저번 일요일, 아내와 같은 감기 증상을 앓던 나는 아내가 먹던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는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얼굴에 모든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고 심장이 뛰는 것 같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만취했을 때보다 더 어지럽기 시작했다. 치사량 이상으로 술을 마신 것만 같이 어지러웠고 표현하기 어려운 죽을 듯한 고통이 계속되었다. 고통 때문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화장실로 향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 누워있었다.

다행히 약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토하려고 노력했고, 토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변기에 머리를 댄 채 또 기절해 있었다. 물 묻은 머리카락을 닦다가 또 기절, 정신을 차려보니 이번에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세수해 가면서, 세면대에 머리를 비벼가며 고통을 견디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두어 번 더 기절했던 것 같다.

좀 진정되면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간호사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위험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쇼크 증상이 있으면 바로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고.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그냥 죽을 수도 있었다고.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쇼크인데 알 리가 있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혹시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주저 없이 119에 신고하길 바란다. 생명에 있어서는 유난 떠는 것이 없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도 일단 사는 게 먼저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응급실 입구를 못 찾아서 10분을 더 헤맸다. 의사 선생님은 약을 토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수도 있겠다며 다행이라고 말씀하셨고, 혈액검사와 심전도검사를 마치고 수액을 좀 맞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양평으로 향하던 길이었고 돌아오려면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상황. 집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말로 삶이 끝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주마등은 딱히 없었다. 죽기에는 조금 억울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긴 했구나 여한은 없다는 생각도 잠시나마 들었다.

죽음을 코앞에서 느끼는 순간에도 그 와중에 '다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리기엔 커다란 것들이 남아있었다. 쇼크가 온 당일 기준으로 이틀 뒤엔 결혼기념일이었고, 4일 뒤에는 코로나로 가지 못한 해외 신혼여행 출발일이었고, 그걸 제쳐두고도 아내를 혼자 남겨놓고 가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끊겨버리는 순간은 어쩔 수 없었지만 깨어서 괴로운 와중에도 최대한 호흡하고 최대한 초점을 잡아서 바라보려고 했고 세면대에 머리를 찧어가며 견뎠다. 약을 토해서 다행히 진정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천운이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갑자기 찾아올 수 있었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항상 별 탈 없이 찾아오는 매일의 내일.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다른 세상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매일 치열하거나 보람차게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도록 마음이 시키는 일, 당장 행복한 일들로 일상을 가득 채워가며 살아냈으면 좋겠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시작해 나와 함께하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하다. 이번 추천곡은 원하는 것, 꿈꾸는 것에 닿으면 미련이 없을 것 같다고 간절히 바라는 내용의 가사가 담긴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