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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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

시간이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무언가 깎여나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분명 그 반대 어딘가에선 충실히 쌓여가고 있을 텐데도 그 장면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져 있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존재하는 존재이기 때문인가 싶다.

삶의 여러 순간들을 겪으며 마음은 서서히 깎여나가고 그 조각들은 마음 깊은 곳에 차곡히 쌓여간다. 몰입했다 싫증내고,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간절했던 것들에 무뎌지고 전부인 것만 같던 것들이 별게 아니게 되고. 그렇게 켜켜이 쌓인 경험들로 지혜로워지지만 그 존재는 점점 동그래진다.

한 친구가 최근에 이별을 겪었고 몇 주째 그리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아마 몇 달은 더 그럴 것만 같다. 30대가 된 나의 친구들은 어서 털어버리고 다른 좋은 인연을 찾으라고. 이렇게 오래 힘들어하면 너만 힘들다고들 한다. 그들도 그 친구와 같은 20대를 보냈고 죽을 만큼 힘들어 보았기 때문에.

아파하는 시간은 분명 소중한 시간이 맞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미 여러 이별을 겪으며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마땅히 얘기할 곳이 없는 친구는 먼 타지에 있는 나에게까지 전화로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는데 그 모습이 문득 안쓰럽기도 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비슷한 시간을 지나오며 서로 비슷하게 깎인 모습도 틀리지 않았고, 그 시간 속에 간절히 지켜 남아있는 모나거나 튀어나온 부분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도 틀리지 않다. 그냥 나의 마음 가는 대로 순간에 충실하면, 그렇게 살아내면 될 것 같다.

나의 20대의 대부분이었으며 모든 음악을 관통하던 사랑의 결여, 갈급함은 결혼하며 해결되어 가장 무딘 부분이 되고 나의 존재나 가족을 지키는 것에는 예민해졌다. 전부였던 것은 어떤 기점으로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은 갑자기 가장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한다.

과거도 현재도 모든 순간들은 소중하다. 치열히 살아내자.

글감을 던져준 나의 오랜 친구 위광복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