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패스 필터 음악적으로 활용하기

이번 가이드에서는 음악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도구, 바로 EQ의 하이패스 필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불필요한 저역대를 잘라내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하지만 하이패스 필터의 진가는 그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이패스 필터에 대해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최소한의 조작으로 최대한의 음악적인 면을 끌어내는 믹싱을 할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콘솔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사운드의 비밀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창의적인 활용법까지 이번 가이드를 잘 따라오시면 프로 엔지니어들이 사용하는 로우앤드 디자인 기술을 마스터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이패스 필터의 기본 개념

하이패스 필터(High-pass Filter)란?

'로우컷 필터'라고도 부를 때가 있지만 정식 명칭은 하이패스 필터(High-pass Filter)입니다. 말 그대로 높은 주파수는 통과시키고 낮은 주파수는 차단하는 필터인 거죠.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은 20Hz에서 20kHz 사이인데요. 그중에서도 20Hz에서 수백 Hz 사이의 저역대는 경우에 따라 비교적 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럼블이나 노이즈 등 불필요한 성분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대역을 걸러내는 게 하이패스 필터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보통 컷오프 프리퀀시(Cutoff Frequency)를 설정하고, 그 아래 주파수는 일정한 기울기로 감쇠되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하이패스 필터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노이즈를 없애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음악적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로우엔드 정리의 중요성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아마도 웅장하고 파워풀한 베이스 사운드일 겁니다. 그 묵직하고 풍성한 저역의 울림이 우리를 사로잡고 몸을 움직이게 하죠. 마치 지구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듯한 그 떨림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끌리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우앤드의 힘은 좋은 음악의 근간이라 할 만해요.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저역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오히려 음악의 퀄리티를 해치는 결과를 낳기도 해요. 지나치게 많은 저역 에너지는 곡을 답답하고 혼탁하게 만들죠. 무대 위 악기들이 뒤엉켜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요. 그래서 숨 막히는 음향 속에서도 질서와 조화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로우앤드 정리의 묘미입니다.

특히 악기별로 주요 주파수 영역이 겹치는 부분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가령 베이스 기타와 킥 드럼은 40~200Hz, 일렉트릭 기타와 피아노는 80~300Hz 정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죠. 이 영역에서 불필요하게 겹치는 주파수가 많으면 각 악기의 개성은 사라지고 음악은 텁텁해지기 마련이에요. 상호 간섭으로 인해 정작 듣고 싶은 소리는 묻히고 시원찮은 울림만 공간을 메우게 되는 거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각 악기의 역할과 존재감을 면밀히 분석해야 해요. 베이스는 묵직한 울림을 책임지고, 킥 드럼은 리듬의 중심을 잡아주며, 기타나 피아노는 화성과 멜로디를 풍성하게 채워주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에 걸맞은 로우앤드 정리 작업을 통해 음향 팔레트 위에서 각자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일렉트릭 기타의 경우, 100Hz 아래의 불필요한 저역을 하이패스 필터로 깔끔하게 걷어내 주는 것만으로도 전체 사운드가 한결 선명해집니다. 베이스 기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기타 특유의 엣지(Edge)와 또렷함은 살려내는 거죠. 반대로 보컬의 경우 200Hz 아래로 내려가면 목소리가 탁해지고 어눌해지곤 해요. 그래서 하이패스로 살살 푸시업 해주면 마치 안개가 걷히듯 보컬의 매력이 쨍하고 살아나곤 하죠.

사실 이런 정리 작업은 꽤나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일 수 있어요. 트랙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외과수술을 하듯 저역을 다듬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공을 들인 만큼 음악은 깊이를 더해가게 됩니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깎고 또 깎아 빛나는 면모를 일궈내듯이 말이죠. 제각기 숨 쉬던 음원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호흡하는 짜릿한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음악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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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astering.com

하이패스 필터의 다양한 얼굴

기울기(Slope)에 따른 필터의 변신

하이패스 필터를 다룰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바로 '컷오프 프리퀀시(Cutoff Frequency)'입니다. 말 그대로 차단이 시작되는 주파수 지점이죠. 이 길목에서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저역을, 얼마나 빠르게 차단할 것인가?" 바로 하이패스 필터의 '기울기(Slope)'를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사실 기울기의 존재야말로 하이패스 필터를 단순한 On/Off 스위치에서 창의적인 사운드 디자인 도구로 격상시켜 주는 핵심입니다. 같은 컷오프 프리퀀시라 해도 기울기에 따라 소리의 인상이 극적으로 달라지니까요. 마치 오래된 LP판을 깎아내듯 부드럽게 저역을 걸러낼 수도, 무디고 둔탁한 저음을 단칼에 썰어낼 수도 있습니다. 하이패스 필터의 진면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그럼 기울기의 종류부터 하나씩 살펴볼까요? 일반적으로 하이패스 필터는 옥타브당 6dB, 12dB, 24dB 단위의 기울기 옵션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dB/oct'는 한 옥타브 위로 올라갈 때마다 몇 dB씩 감쇠되는지를 나타내는 단위인데요. 쉽게 말해 저역이 얼마나 가파르게 차단되는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우선 가장 완만한 기울기인 6dB/oct부터 볼까요? 한 옥타브마다 6dB씩 서서히 감쇠되니 컷오프 지점 아래로도 꽤 많은 저역 정보가 남아있게 됩니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음원 본연의 따스한 질감을 해치지 않는 부드러운 롤오프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보컬이나 어쿠스틱 기타같이 섬세한 뉘앙스 표현이 중요한 음원에 이 기울기를 적용하면 자연스러운 Low-End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반면 12dB/oct의 기울기는 좀 더 실질적인 저역 컨트롤이 가능합니다. 한 옥타브 위로 갈 때마다 -12dB씩 빠르게 감쇠되니 컷오프 아래의 주파수는 제법 또렷하게 사라지게 되죠. 그러면서도 너무 급격한 차단으로 인한 톤의 손실은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dB/oct는 일종의 만능 기울기로 통하는데요. 대부분의 음원에 무난히 적용해도 자연스러우면서도 깔끔한 하이패스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가장 급격한 기울기, 24dB/oct를 만나볼 차례네요. 한 옥타브에 무려 -24dB나 줄어드니 컷오프를 기점으로 저역이 솎아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말 그대로 스위치를 끊어버리는 듯한 단호함이랄까요. 그래서 타악기처럼 어택감이 생명인 음원에 이 기울기를 적용하면 시원하고 통쾌한 저역 제거 효과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킥 드럼의 펀치를 쫀득하게 다잡는다든지, 스네어의 속알맹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든지 하는 식이죠.

이처럼 하이패스 필터의 기울기에는 각기 다른 색채가 담겨 있습니다. 6dB/oct의 부드러운 터치, 12dB/oct의 절제된 균형감, 24dB/oct의 강렬한 존재감까지. 그저 숫자의 나열이 아닌, 소리의 결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인 셈이죠. 곡의 분위기나 악기의 역할에 걸맞은 기울기를 선택하는 센스, 그것이야말로 하이패스 필터 사용의 기본기라 할 수 있겠네요.

아날로그 콘솔 필터의 매력

여러분, 혹시 아날로그 레코딩의 향수를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요즘은 디지털로도 아날로그 콘솔 필터들의 특성이 잘 복각되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퀸, 프린스, 라디오헤드 음반의 그 따뜻하고 풍부한 사운드, 사실 그 음악들이 녹음될 당시 사용된 SSL이나 API, 니브 콘솔의 EQ가 지금도 현역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 인기 비결 중 하나가 바로 각 콘솔 고유의 개성 있는 EQ 회로에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하이패스 필터야말로 아날로그 콘솔 사운드의 정수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어요. 단순히 주파수를 차단하는 것 이상으로, 독특한 색채와 질감을 더해주는 마법의 도구죠. 그 비밀스러운 변신의 과정을 니브, API, SSL, 트라이던트 콘솔의 사례를 통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할게요. 각 원본 콘솔의 필터 특성을 이해하고 있으면 디지털 복각 플러그인을 이용할 때도 좀 더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적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니브(Neve) 콘솔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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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iversal Audio

니브 콘솔은 클래식 브리티시 사운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예요. 두터우면서도 섬세한 중저역과 부드러운 고역이 마치 따스한 양털 담요를 덮어주는 듯한 음색이 특징이죠. 그 매력의 중심에는 1073 모듈로 대표되는 니브 EQ가 있습니다. 사실 니브 콘솔 필터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저역대 사운드 디자인에 있습니다.

그 유명한 '니브 사운드'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트랜스포머 기반의 회로 설계에 있다는 걸 아시나요? 여기에 사용된 세인트-아이브 트랜스포머는 니브 콘솔 특유의 윤기와 두께를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더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니브 콘솔 필터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저역 블리드(Low-end Bleed) 현상이죠.

1073 모듈의 하이패스 필터는 18dB/oct의 기울기로 저역을 걷어내는데요. 재밌게도 차단 주파수 바로 위쪽에서 2-4dB 정도 레벨이 부스트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마치 차단된 저역의 반동으로 옆구리가 불쑥 치켜 올라가는 듯한 인상이랄까요? 이 독특한 'Neve Hump'는 저역을 깎으면서도 어딘가 묵직한 중저음을 남겨두게 만드는 묘한 특성이에요.

덕분에 니브 필터를 통과한 킥 드럼은 한층 더 꽉 찬 펀치감을 얻게 되고, 베이스 기타는 윗단에 탄력 있는 끈적임이 더해집니다. 보컬이나 어쿠스틱 기타에도 그윽한 온기를 보태주죠.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도 따뜻하고 풍부한 느낌을 가져가고 싶다면 니브 필터의 컬러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워낙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많은 디지털 복각 플러그인들이 시중에 있고, 필자는 그중에서 Acustica Audio와 Softube의 것을 가장 선호하는 편입니다.

API 콘솔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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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I Audio

API 콘솔을 떠올리면 강력한 펀치와 도드라지는 트랜지언트가 먼저 떠오르죠. 위의 사진처럼 런치 박스 사이즈로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마치 땅을 박차고 일어서는 듯한 기운차고 빠른 사운드가 API만의 개성이라 할 수 있어요. 550A로 대표되는 API EQ 역시 그 캐릭터를 오롯이 담아내는데요. 파라메트릭 밴드 중 50Hz를 하이패스 필터로 돌리면 일반적인 하이패스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50Hz 아래로는 가차 없이 차단하면서도 100Hz 언저리에서는 무려 3dB 이상 레벨을 끌어 올리는 거예요. 저역을 깎아낸 자리를 중저역이 힘차게 메우며 전체적인 에너지 밸런스를 맞추는 듯한 인상이랄까요? 마치 주먹으로 한 방 먹인 뒤 바람을 끌어안듯 중역의 펀치로 극복하는 API 필터 특유의 근성이 꽤 매력적입니다.

이런 현상 덕분에 킥이나 베이스는 더 강렬하고 날카로운 어택을 손에 넣게 됩니다. 찰진 중저역의 펀치로 비트를 쫀득하게 밀어붙이는 거죠. 더블베이스나 플로어 탐 등 저역 타악기의 존재감도 한껏 높여줍니다. 그루브에 살을 붙이고 싶을 때, API 필터만큼 유용한 것이 없습니다. 그 특유의 에너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SSL 콘솔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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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olid State Logic

1980년대 중반, 영국의 작은 회사에서 출시된 신형 콘솔이 음악 산업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솔리드 스테이트 로직(Solid State Logic), 줄여서 SSL 콘솔이죠. 100% 트랜지스터 회로로 구현된 초고속 어택, 선명하고 현대적인 사운드는 그야말로 혁명이었어요.

유명한 G컴프 외에도 E, G 시리즈에 탑재된 이퀄라이저는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1등 공신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정밀한 수정이 가능하여 한국의 녹음실들에 가장 많이 도입되었던 콘솔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SSL EQ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로우앤드 다이내믹스를 제어하는 기술이었는데요. 하이패스 필터 역시 그 성격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필터의 기울기는 무려 18dB/oct로, 상당히 가파른 편이죠.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차단 주파수 직상부에서 2~3dB의 레벨 피크가 발생하는 거예요. 마치 용수철처럼 튕겨 오르는 듯한 인상인데요. 이 피크 덕분에 SSL 필터를 통과한 킥 드럼은 날렵한 펀치감을 얻게 되고 스네어는 치고 올라오는 존재감을 손에 넣습니다.

Trident 콘솔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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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rident Audio Developments

197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아날로그 콘솔이 또 있습니다. Lou Reed, Queen, David Bowie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탄생시킨 트라이던트 콘솔이죠. 그 명성의 1등 공신이 바로 A-Range 모델에 탑재된 EQ였는데요. 세 개의 하이패스 필터 버튼을 개별로 누르거나 혹은 동시에 눌러서 하이패스 필터를 조작할 수 있는게 특징이에요. 플러그인으로는 Softube와 Arturia가 정밀한 복각 플러그인을 제작했습니다.

트라이던트 하이패스 필터의 가장 큰 매력은 그 느린 기울기에 있습니다. 6dB/oct, 혹은 12dB/oct로 저역을 천천히 걸러내는데요. 마치 파도가 부드럽게 해변으로 밀려오듯 자연스러운 롤오프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면서도 200Hz 언저리에서는 은은한 부스트가 감지됩니다. 1~2dB 정도의 중저역 푸시로 음원에 아날로그 특유의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트라이던트 필터는 보컬이나 어쿠스틱 악기처럼 날카로운 디지털 사운드가 어울리지 않는 소스에 특유의 부드러움과 온기를 불어넣기 아주 좋습니다.

악기별 하이패스 필터 활용 예시

자, 이제 하이패스 필터에 대해 이론적으로 충분히 배웠으니 실전에 적용해 볼 시간입니다. 각 악기군별로 어떤 주파수 대역을 어떤 기울기로 정리할지, 어떤 콘솔 필터의 특징이 어울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래는 하이패스 활용의 예시입니다. 선호하는 음악적 취향과 장르적 특성에 따라 상황에 적합한 판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드럼

  • 킥 드럼 : 보통 30~60Hz 사이를 12dB/oct 이상의 기울기로 차단합니다. 룸 마이크에 담긴 불필요한 저역 에너지를 제거하되, 펀치감을 주는 60~100Hz 영역은 살려주는 거죠. 니브나 API 콘솔 필터의 중저역 부스트를 활용하면 어택에 날카로운 포인트를 찍어줄 수 있어요.
  • 스네어 드럼 : 보통 100~200Hz 사이를 12~18dB/oct의 기울기로 정돈합니다. 너무 많이 잘라내면 펀치가 약해질 수 있으니 적당히 타협점을 찾는 게 좋아요. SSL 콘솔 필터의 중저역 피크를 활용하면 치고 올라오는 질감을 극대화할 수 있죠.
  • 탐탐 : 하이패스를 200Hz 언저리에 걸고 12dB/oct 정도의 기울기로 롤오프합니다. 탐의 펀치감은 유지하되 북북한 저역은 걸러주는 거죠. 트라이던트 콘솔 필터처럼 부드러운 롤오프를 사용하면 플로어 톰의 둥근 질감을 살릴 수 있어요.
  • 오버헤드/룸 : 딱히 뚜렷한 역할이 없는 저역은 200Hz 언저리에서부터 6dB/oct 기울기로 부드럽게 제거합니다. 공간감은 살리되 뭉개짐은 방지하는 셈이죠. 트라이던트 콘솔의 서브 롤오프 스타일이 잘 어울립니다.

베이스

  • 일렉트릭 베이스 : 50~100Hz 사이를 12~18dB/oct 기울기로 정돈합니다. 200Hz 아래의 불필요한 웅웅거림은 깔끔하게 정리하되, 200~400Hz의 우든 톤은 살리는 게 포인트죠. 니브 콘솔 필터의 펀치한 중저역 부스트가 딱 들어맞습니다.
  • 신스 베이스 : 베이스 사운드의 캐릭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40~80Hz 언저리에서 24dB/oct 이상의 경사를 주어 타이트하게 만듭니다. 808 베이스 드럼처럼 저역 위주의 사운드라면 30Hz 이하의 서브 저음까지도 과감히 정리하는 게 좋아요. API 콘솔 필터로 중저역에 펀치감을 더하면 금상첨화겠죠.

기타

  • 리듬 기타 : 80~120Hz를 12dB/oct 기울기로 롤오프합니다. 200Hz 언저리의 몸통 울림은 살리되 저역의 부유감은 걷어내 주는 거예요. 니브 콘솔이나 SSL 콘솔 필터로 중저역에 또렷한 엣지를 심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 리드 기타 : 200Hz 아래를 12~18dB/oct로 빠르게 정리합니다. 400Hz 이상의 프레젠스와 하이엔드 디테일은 극대화하되, 저역의 둔탁함은 최소화하는 거죠. 니브 콘솔 필터로 펀치감을 살짝 추가해 줘도 좋아요.

보컬

  • 리드 보컬 : 80~120Hz를 12dB/oct 정도로 롤오프합니다. 가슴 울림은 살리되 후두 진동은 걸러주는 셈이죠. SSL이나 트라이던트 콘솔 필터의 중저역 터치로 목소리에 따스함을 더해주는 것도 잊지 마세요.
  • 백 보컬 : 120~200Hz를 12~18dB/oct로 정돈합니다. 메인 보컬보다는 약간 더 많이 잘라내 박진감을 높이는 거죠. 니브 콘솔 필터로 중저역의 두께감을 약간 보태주는 것도 좋은 선택이에요.

건반

  • 피아노 : 룸 마이크를 사용했다면 80~100Hz를 12dB/oct 기울기로 롤오프해 울림을 정리합니다. 200~400Hz의 우든 톤은 살려주되, 저역의 먹먹함은 해소하는 거죠. 트라이던트 콘솔 필터로 중저역에 따뜻한 온기를 더해줘도 좋습니다.
  • 패드 : 패드 사운드의 주된 역할이 공간감 연출이라면, 100Hz 아래는 12dB/oct 정도로 부드럽게 걷어냅니다. 배음의 여운은 충분히 남겨두되 저역의 답답함은 해소하는 셈이죠. 니브 콘솔 필터로 중저역에 푸시감을 더하면 입체감이 살아납니다.

창의적으로 하이패스 필터 활용하기

오토메이션을 통한 동적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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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iZotope

이퀄라이저의 진가는 고정된 세팅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파수 배치를 역동적으로 연출하는 오토메이션은 믹싱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하이패스 필터 역시 오토메이션의 훌륭한 재료가 되어줍니다.

가장 흔한 활용법은 곡의 구조적 변화에 맞춰 하이패스 필터의 차단 주파수를 역동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이에요. 이를테면 벌스(verse)에서 브리지(bridge)로 넘어가는 전환부에선 컷오프 프리퀀시를 평소보다 높여 시원하게 공간감을 열어주는 거죠. 그러다 후렴구(chorus)로 치고 나가는 순간 다시 걸터앉듯 필터를 제자리로 내려 저역의 풍성한 에너지를 쌓아주면 클라이막스가 더욱 극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또 다른 아이디어로는 드롭(drop)이나 브레이크다운(break down) 같은 곡의 전환점에서 하이패스의 기울기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것도 있어요. 이를테면 킥드럼의 로우앤드를 평상시엔 12dB/oct 정도로 잘라내다가, 강약을 주고 싶은 순간 단숨에 24dB/oct나 48dB/oct로 낙차를 줘 보는 거죠. 짜릿한 저역의 변화를 연출할 수 있을 거예요. 비슷한 개념으로 스네어 백비트마다 하이패스를 4~8dB/oct 정도 주기적으로 들어 올려 주는 것도 흥미로운 효과를 낳습니다.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 구간에선 보컬의 로우앤드를 한층 파고들게 오토메이션해도 좋습니다. 평소엔 200Hz 언저리를 12dB/oct로 깔끔하게 잘라내다가, 하이라이트 파트에선 100Hz까지 가슴을 활짝 열어 후렴의 전달력을 극대화하는 식이죠. 반대로 간주 파트에서 멜로디컬한 신스 리드가 돋보이게 하고 싶다면, 그 전후로 패드 등 다른 악기들의 컷오프 프리퀀시를 살짝 올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렇듯 하이패스 필터의 주파수 변화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평면적으로 느껴지던 믹스에 입체감을 더할 수 있어요. 마치 영화에서 카메라가 클로즈업과 롱샷을 오가며 시점을 다양화하는 것처럼 말이죠. 로우앤드의 움직임이 곧 음악의 호흡이 되고 극적 긴장감의 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오토메이션 기법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곡의 구조와 흐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악기별 역할과 음역대의 균형, 그리고 전체적인 다이내믹스의 굴곡까지 종합적으로 읽어내는 직관이 필요합니다. 주파수 스펙트럼을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배치하고 재배치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병렬 프로세싱을 통한 질감 강화

병렬 프로세싱은 원신호와 별개로 복사된 신호에 이펙트를 걸어 다시 합치는 기술입니다. 이를 하이패스 필터에 적용하면 저역의 질감을 한껏 살릴 수 있는데요. 원신호에는 일절 손대지 않고, 병렬 트랙에만 하이패스를 걸어 묵직한 틀은 그대로 둔 채 정교한 조각칼로 결을 살리듯, 억지로 깎아내지 않고 더함으로써 깊이를 끌어내듯 작업을 하는 거지요.

그 병렬 트랙에 디스토션을 살짝 걸어 하모닉스를 더하고, 전체 트랙과 섞어 들으면 놀라운 결과가 펼쳐집니다. 킥 드럼은 묵직한 펀치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격적인 톱엔드가 보강되죠. 드라마틱하지만 깨끗한 중저역의 질감을 원한다면 병렬 프로세싱만 한 것이 없습니다.

보통 EQ로 저역을 깎아낼 때 우리는 원 소스에 직접 하이패스 필터를 걸어 작업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로우앤드의 펀치감이나 웨이트감이 사라지면서 음악의 몸통이 얇아지곤 하죠. 특히 킥 드럼이나 베이스 같은 저역 악기는 저음역대가 가진 고유의 질감과 윤곽을 잃기 쉽습니다.

이럴 때 병렬 프로세싱이 해법이 될 수 있어요. 원신호는 그대로 두고, 그것을 복제한 병렬 트랙에만 하이패스 필터를 걸어주는 거죠. 그러면 병렬 트랙에서는 저역이 완전히 사라진 날씬한 사운드가 만들어집니다. 마치 로우앤드의 망토를 홀랑 벗겨낸 것처럼요.

이 병렬 트랙에 이제 디스토션을 살짝 얹어 보세요. 클리핑이 일어나며 고차 하모닉스가 생성될 텐데요. 저역이 없는 상태에서 하모닉스가 첨가되니 묵직한 저음 대신 날카롭고 에지 있는 새로운 음색이 탄생합니다.

이렇게 가공된 병렬 신호를 원래의 풀레인지 신호에 섞어 들으면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요. 원신호의 묵직한 펀치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위로 날렵하고 공격적인 톱엔드가 얹혀지는 거죠. 두 가지 성격의 사운드가 공존하며 로우앤드에 새로운 질감과 윤곽을 부여하는 셈이에요.

저역이 두꺼운 808 킥에 이 기법을 적용하면 차원이 다른 사운드 디자인이 가능해집니다. 쿵쿵한 펀치는 그대로 살리면서 턱 끝을 날카롭게 세워주는 거죠. 베이스 기타도 마찬가지예요. 200Hz 언저리의 묵직한 웨이트감은 유지하되 700Hz 근처에 에지를 심어 입체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병렬 프로세싱의 묘미는 원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저역에 새로운 디테일을 추가할 수 있다는 데 있어요. 마치 조각가가 거친 돌덩이는 그대로 둔 채 섬세한 세공으로 결을 살리는 것과 같죠. 저역을 깎아내며 살을 깎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빛깔을 덧입히는 개념이랄까요?

이 기법의 핵심은 하이패스 필터링된 병렬 트랙에서 얻은 날렵한 에너지를 원 신호의 묵직함과 절묘히 융합시키는 데 있습니다. 듣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실제 작업에서는 꽤나 섬세한 터치가 필요하죠. 병렬 트랙의 하이패스 주파수와 디스토션의 강도, 그리고 믹싱 밸런스를 조율하는 감각. 그것이 로우앤드 사운드 디자인의 센스를 좌우하는 열쇠가 됩니다.

'최소한의 조작으로 최대한의 음악성을 끌어내자'

이렇게 필터 하나만으로도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고 개성을 심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요. 단순히 잘라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빈 공간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느낌을 채워 넣는 로우앤드 디자인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날로그 장비의 특성을 활용해 하이패스 필터에 음악성을 불어넣는 테크닉, 오토메이션으로 역동적인 주파수 배치를 만드는 기술, 그리고 병렬 프로세싱으로 중저역 질감에 날개를 달아주는 노하우까지. 이 모든 팁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바로 '최소한의 조작으로 최대한의 음악성을 끌어내자'는 것이죠.

여러분도 이제 하이패스 필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으리라 믿습니다. 단순한 잡음 제거의 도구가 아니라, 음악에 숨결을 불어 넣는 창조의 붓이 바로 이 조그만 장치에 담겨 있다는 사실. 이제부터 하이패스 필터를 통해 여러분의 손끝에서 새로운 상상력의 물결이 출렁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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