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From S] 매일매일 허물 벗기

나에게 음원을 발매하는 과정은 즐거움이 꽤나 큰 프로젝트였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만든 노래, 노래를 부르던 나의 목소리, 그 노래를 연주하며 자유로워지던 순간들을 응축해 담은 결과물이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노래가 그에게 닿기를 빌며 완성하는 과정을 사랑했다.

잠깐이나마 꿈꾸는 것을 사치라고 여기며 지내왔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나도 사는 게 바빴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아름다운 영화, 아름다운 노래들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또 자연스레 잊고 있던 나를 만나게 되더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세 노래를 기획했고, 손길을 더하고 또 더했다. 그 세 곡의 노래가 '허물 벗기'라는 앨범 속에 담겨 세상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이전까지 작업해오던 방식은 꽤 옛스러웠다. 손으로 그린 악보, 단출한 편성, 컴퓨터와는 거리가 먼 내가 상상할 수 있던 세계는 좁았다. 내가 시도하고 싶은 소리들이 뜬구름처럼 머릿속에 늘어만 가다 보니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컴퓨터의 도움, 접해보지 않았던 악기들의 도움이.

그러기 위해선 전원을 켜면 비명을 지르는 나의 2011년형 맥북과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내게는 과감한 결정이었다. CD롬이 있는 나의 맥북은 은근한 자랑거리였기 때문이다. 과감한 결정이 불러온 손 떨리는 지출로 새로운 맥북과 인사했다. 그리고 한 발씩 더듬거리며 넘어보지 못했던 세계로 향했다.

다른 이에게 맡겨만 두었던 작업들을 내 손으로 해내기 시작하니 시간도 무척 오래 걸리고 좌절도 많이 했다. 노래를 다듬을수록 욕심도 커지고 고집도 커졌다. 욕심인지 완성도인지 늘 헷갈려 하며 붓칠을 더했다. 노래에 나의 손길을 더하고 다른 이의 손길을 빌려 더하거나 혹은 빼는 과정이 인도하는 끝은 매우 흥미로웠다. 선택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들의 경우의 수는 늘 재밌었다. 직감을 빌려 아, 이거다! 싶은 소리를 만났을 때 느껴지던 쾌감은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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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상상해 보지 못했던 편성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트랙 공무도하가에서는 나 스스로 한계를 두었던 목소리의 영역을 깨어 보았다. 목소리로 만들 수 있는 소리들을 재치 있게 만들어 보려 노력했고, 노래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소를 상징할 수 있는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해보기 위해 애를 썼다. 두 번째 트랙 어깨는 피아노와 보컬로 이루어진 노래로 생각하고 작업하던 와중, 귀한 비올라와도 함께 하게 되었다. 피아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박진감과 비올라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음역대로 노래가 완전해진 느낌을 사뭇 받는다.

세 번째 트랙 도망자는 타이틀곡이라는 역할을 받았다. 피아노와 스트링 그리고 나의 목소리가 당신의 손을 잡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신이 그들의 조용한 질주에 동행해 주기를 바라며 열심을 다해 보았다.


살면서 내가 이 정도의 각오로 무언가에 매달려 본 적이 있을까? 승부욕 없는 나라서 늘 포기가 빨랐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으면서 콧대는 높아 간절함을 티 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나의 노래, 공무도하가, 어깨, 도망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갈 수 있는 길을 맘껏 걷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갈래의 노력이 필요했다.

아직도 나는 간절하게 만든 이 노래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내 안에서 나타나 준 것에 고마울 뿐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매달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2022년 하반기 동안 이들에게 매진하며 깨달은 것은 나는 음악을 절대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음악을 마주할 때면 살아있다는 것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삶을 버텨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살아내는 것도 아닌 그냥 사는 것. 과제로서의 삶이 아닌 온갖 희로애락을 마주하는 삶 말이다.


매일매일 허물 벗으며 살아간다. 뼈 옷을 입은 곤충처럼 허물을 벗어야만 끊임없이 자라는 내 몸을 감당할 수 있다.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은 여전히 내게는 두려움이지만 그럼에도 고요한 밤에 소리 없이 허물을 벗는다.

나의 삶이 당신의 삶과 꽤나 닮아있다는 것을 안다. 열심을 다해 만든 이 노래가 당신의 마음에 가닿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