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싱어송라이터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마포구는 문화예술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인디 뮤지션의 성지'로 불려진 만큼, 홍대입구역 근방 경의선 숲길에는 매일 버스킹 공연이 있다.

월 4회 1시간 단위로 무료 신청할 수 있으며, 유동 인구가 많아 관객 모집도 수월해 무관객으로 쓸쓸하게(?) 연주하는 일도 없어 뮤지션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다.

실제로 길을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몰려 버스킹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주로 K-POP이나 발라드 등 기존 아티스트들의 커버곡이 많이 등장하지, 뮤지션의 자작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버스킹이 노래 연습실인가

뮤지션이 공연 무대에서 반드시 자작곡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커버곡도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다. 이어폰으로만 듣던 음악을 다른 누군가가 직접 부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아이돌 곡을 밴드로 편곡하거나, 피아노 반주를 기타 반주로 바꾸고, 남자 노래를 여자가 부르는 등의 모습은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한다.

하지만 아무 편곡 없이 원곡의 MR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새로운 무대라고 할 수 있을까? 버스커가 원곡 가창자와 동일인은 아니어도, 별다른 해석 없이 거의 똑같은 톤과 창법으로 노래한다면 어떨까?

게다가 최소한의 실력도 갖추지 않은 채 기성곡을 똑같이 따라 부르는 경우를 보면 과연 이곳이 버스킹 장소인지, 개인 노래 연습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사람들이 커버곡을 더 좋아해

하지만 싱어송라이터 버스커가 커버곡을 많이 하는 이유가 단지 게을러서, 혹은 자작곡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또한 직접 자신의 곡을 쓰고 노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커버곡보다 자작곡의 비중을 중시하는 싱어송라이터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편곡인가' '인정할 만한 실력 수준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다소 논쟁적인 질문은 둘째치더라도, 현실적으로 버스킹에 커버곡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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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버스킹 무대에서는 처음 듣는 '멋진' 곡보다, 많이 들어본 '익숙한' 곡이 더 많은 반응을 얻는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무관심 속에 공연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없을 것이다.

이는 기획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무대에 다양한 아티스트와 음악이 등장하는 것이 문화예술 발전에 이상적인 방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은 버스커의 자작곡보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의 커버곡을 선호할 수도 있으며, 또한 인기가 검증된 자작곡의 선곡이 더 무난하고 안전한 무대 기획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싱어송라이터가 하청업체인가

버스킹에서 자작곡과 커버곡의 비중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는 무대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이 모두 하는 고민이다. 하지만 필자는 적어도 근 2년간 매일 퇴근길 경의선 숲길을 지나다니며 자작곡보다 커버곡을 훨씬 더 많이 들었다. (혹시 근무시간에 주로 자작곡을 하는 걸까?)

뉴진스, 에드 시런, 성시경 등의 커버곡은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다. 하지만 커버곡을 부르는 사람도 자기 음원을 발표해 본 뮤지션일텐데 무대 선곡의 대부분을, 심지어 전부를 남의 노래로 채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까?

사람들은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고, 하청업체는 자립을 추구하기 보단 당장 조금의 이윤을 나눠 갖고자 기꺼이 대기업을 따른다. 어쩌면 음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